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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당신의 눈부신 투쟁을 응원합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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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호 31면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고된 경비원 일을 힘겹게 계속하는 어르신께 여쭈었습니다. “어르신, 이제 건강을 돌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쉬엄쉬엄 인생을 즐기세요.” “아휴, 모르는 소리. 내 인생 지키자고 하는 일이야. 난 일하는 내가 좋아. 아내도 일하는 내 모습이 멋지대.” 그제야 제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아파트만 지키는 경비원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가 지키는 것은 자신의 삶이었고, 눈부신 자존감이었습니다. 온갖 억울한 감정노동에도 결코 굽힘 없는 자존감을 지키는 일, 백발이 성성해도 여전히 일을 놓지 않는 뚝심이 지금껏 삶을 지탱해 온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저마다 삶에서 지극히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경비원이자 투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 제 여동생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저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누가 내 동생을 괴롭혔다고!” 그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제가 평생 가족을 지키는 경비원이자 파수꾼으로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은 못 지켜도, 끝내 가족만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험한 꼴도 견딜 용기가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처형, 진정하세요. 아내는 제가 지킬게요.” 분노한 저를 웃으며 말려 주는 제부가 있어 다행히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고된 경비원 일 하시는 한 어르신
“내 인생 지키고자 하는 일”
각자 소중한 것 지키려 힘겹게 투쟁
서로에게 따스한 응원 멈추지 말길

선데이 칼럼 6/4

선데이 칼럼 6/4

제 눈에서 일어나던 무시무시한 분노의 불꽃은 수줍고 겸연쩍은 미소로 변했습니다. “아, 제가 또 오버했군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 착한 제부도 남모르게 나를 지켜주고 있었구나. 나도 이 사람을 지켜야겠구나. 나를 다정하게 처형이라 불러주는 사람이 둘, 어여쁜 조카도 셋이나 생겨서, 참으로 좋습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더 강인해지고, 따스해지니까요.

엄마의 일흔두 번째 생신을 맞아 제부는 집에서 온갖 요리를 척척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잔치음식은 처음이었지요. 우리 중 요리솜씨가 가장 뛰어난 제부가 출장뷔페 뺨치는 온갖 산해진미를 선보여 오랜만에 ‘잔치와 모임과 뒤풀이를 모조리 잃어버린 지난 3년’을 되찾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힘겹게 투쟁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김소연 시인은 ‘시옷의 세계’에서 말합니다. 투쟁은 반드시 패기와 결기로 똘똘 뭉친 지사의 행동만은 아니라고. 공짜 자전거를 준다는 유혹을 거절하며 신문구독을 끊는 것도 투쟁이고, 감옥에서 쉽사리 풀려나오는 사람이 경영하는 대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 것도 투쟁이고, 대형 할인마트가 아닌 구멍가게에서 장보기도 투쟁이라고. 관객 없는 영화, 주목받지 못하는 책들, 무명 가수의 앨범을 응원하기 위해 지갑을 열 때마다, 시인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작지만 소중한 투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문학은 죽었다’고 외칠 때도, 항상 문학의 언저리에서 쭈뼛쭈뼛 서성이는 삶을 살아온 것도 제겐 투쟁이었습니다. ‘글을 써서 어찌 먹고사냐’는 주변의 압박 속에서도 오직 글쟁이로 살기 위해 다른 길은 곁눈질하지 않은 것도 제게는 힘겨운 투쟁이었습니다. 엄마가 되어 봐야 비로소 철이 든다는 주변의 질책에 귀를 막고 ‘엄마 아닌, 그냥 사람’으로 살아온 지난날들도 제겐 투쟁이었습니다.

싸움은 영웅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투쟁하고 있습니다. ‘어떤 싸움으로 누구를 지킬 것인가’를 우리가 매 순간 결정하고 있습니다.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는 『어떻게 지내요』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고통받는 사람을 보며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둘째, 내겐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전자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고된 시간을 견뎌내고, 후자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저 사람의 고통은 나와 상관없다 생각하는 사람’ vs ‘세상 모든 사람은 결국 모든 존재와 연결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투쟁입니다. 타인의 고통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꾸만 세상을 각자도생의 세계, 약육강식의 살얼음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반면 타인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그 아픔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든 더 따스하게 만들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 신경 써야 하는 존재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네 상처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차가운 말로 상처받는 일이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차마 물을 수 없을 때는, 다만 곁에 앉아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방해하지 않게, 너무 가까이 앉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요. 당신이 기대어 울 어깨가 필요할 때 언제든 어깨를 빌려드릴 수 있도록,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중한 존재들이 너무 많아 지킬 것도 무진장 많은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더 살 만하게 만듭니다.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당신의 뒷모습이 못내 애틋합니다.

우리 서로에게 부디, 더 따스한 응원을 멈추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니?” “밥은 먹었어?” “네가 있어서, 참 좋다.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좋아.”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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