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최근 1년은 백의종군의 시기였다. 지난해 6월 전당대회에 도전했지만 예상치 못한 ‘이준석 돌풍’을 만나 아쉽게 고배를 마신 뒤 무대 뒤편에서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9 대선을 앞두고도 대선 캠프에서 전면에 나서기보다 물밑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돕는 일을 택했다. 내 선거처럼 뛰는 바람에 링거까지 맞아가며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윤 대통령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대통령 특사단장 역할을 맡겼다. 그 어느 때보다 자국의 이익을 내세우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때에 새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와 미래 비전을 설명하는 임무를 지게 된 것이다. 지난달 22일부터 4박 5일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경제 대사’역할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6·1 지방선거가 임박하자 사방에서 지원 유세 요청이 들어왔고, 이를 거부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뛰었다. 지방선거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나 전 원내대표를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다보스포럼의 핵심 의제는 무엇이었나.
- “‘경제 안보’와 ‘탄소 중립’(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배출량을 없앤다는 개념)이 끊임없이 강조됐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끼리만 ‘안전하게’ 무역하자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각종 공급망과 경제, 안보가 직결돼있기 때문이다.”
- 경제 안보는 결국 니 편 내 편을 가르겠다는 거 아닌가.
- “최근 우리나라도 요소수 공급망을 쥔 중국이 수출을 줄이면서 피해를 보지 않았나. 이런 일 때문에 국제 사회가 각 나라의 이익과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작은 블록으로 나눠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런 차원에서 대통령실에 경제안보비서관을 신설하고 IPEF(인도태평양경제협력프레임) 참여를 결정한 것이다.”
- 멀리 스위스에 다녀오자마자 지방선거 유세를 뛰었다.
- “귀국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날부터 지원 유세를 약속한 곳으로 향했다. 일정을 소화하려면 코로나19 음성 확인이 필요하다기에 늦은 밤 일부러 병원을 찾아 16만원을 주고 PCR 검사도 받았다. 최대 격전지인 경기도에 가서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의 지원 유세를 펼쳤다. 그런 후 사흘 동안 경기, 충남, 충북, 울산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유세차를 타고 마이크를 잡았다.”
- 선거 결과가 좋다.
- “이번 선거의 1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윤 대통령이다. 한·미동행 강화, 청와대 개방 등의 행보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줬다고 생각한다. 우리 지역구(서울 동작을)에서는 내가 공천한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이 전원 당선되는 쾌거를 거뒀다. 내 지역을 지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내겐 의미가 크다.”
- 김은혜 후보는 석패했다.
- “경기도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22곳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니 도지사 선거를 졌다고 해서 다 졌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바닥 민심을 흡수하지 못한 데엔 재산 신고 누락 등의 이슈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 김은혜 후보가 당선됐으면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라 힘들었다고 보나.
- “우리 당에서 여성 정치인은 항상 이용 당하기만 했다. 내가 4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 비례의원들이 왔다가는 걸 봤겠나. 더불어민주당은 여성 정치인에게 당선 가능성 높은 지역에 공천을 주거나 입각시키는 방법으로 기회를 줬다. 하지만 우리 당에선 여성을 험지에 내모는 식으로 구색만 맞췄던 것 같다. 이번 정부에선 당의 방침이 좀 달라지길 기대해본다.”
- 여러 장관 후보 하마평에 올랐다.
- “소문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 취임식 날, 1000명의 내빈이 앉는 단상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지역 당원협의회에 나온 30장의 초대장 중 하나를 받는 정도였다. 나중에 보니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도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더라. 섭섭함도 있었다. 나는 윤 대통령의 마지막 유세 현장인 시청광장에서 윤 대통령의 부탁으로 무대에 올랐던 사람이다. 대선 때는 링거까지 맞아가며 윤 대통령을 열심히 도왔다. 윤 대통령이 86번 유세 갈 때, 나는 88번 갔다더라. 그래도 지방선거까지 모두 다 이기니 다행이다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 큰 선거가 끝났으니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조기에 열릴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도 있다.
- “그럴 일은 없다고 본다. 전대 출마 계획도 없다. 이제 선거는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