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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기숙이 고발한다

'강성팬덤 갑질정치' 중독된 민주당...'6·1 패배' 예정된 결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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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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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에 대한 반성을 했던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배경은 강경 지지자들의 '조국 수호' 집회 모습. 그래픽=김경진 기자

팬덤 정치에 대한 반성을 했던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배경은 강경 지지자들의 '조국 수호' 집회 모습. 그래픽=김경진 기자

대한민국 국민의 선택은 냉철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심판하면서도 김동연 후보는 경기도지사에 당선시킴으로써 희망의 근거는 남겨 두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무소속 후보의 높은 호남 득표율은 이제 민주당의 안방조차 무풍지대가 아님을 엄중히 경고했다. 역대 지선이 정부 힘 실어주기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하지만 지난 대선이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초박빙이었던 만큼 거꾸로 양쪽 지지층이 총결집하는 리턴매치도 가능했다. 2002년 이후 역대 최하의 지선 투표율(50.3%)이라는 결과는 불행히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할 이유를 찾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노무현과 정반대로 질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정치는 명분이라며,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보다 낫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노무현을 수시로 이용하면서도 그 정신과는 정반대로 질주했다. 대선 패배에 책임지는 모습, 변화의 모습을 보여줘도 쉽지 않은 선거 앞에 민주당은 권력자를 지키겠다고 국회의원의 꼼수 탈당까지 불사하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했다.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송영길 전 당 대표와 이재명 전 대선 후보는 연고도 없는 곳으로 꼼수 출마했다. 이 후보는 가까스로 생명줄은 이어가게 되었지만 탄핵 수준의 참패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2018년 8월 이해찬 민주당 당 대표는 '민주정부 20년 집권 플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 2018년 8월 이해찬 민주당 당 대표는 '민주정부 20년 집권 플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20년, 50년 집권을 외치던 민주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더 암울한 건 미래도 낙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 이상 지지자의 가치를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원칙보다 꼼수가 먼저인 정당이 된 건 국민을 믿지 않은 탓이라 생각된다. 강성지지층의 팬덤에 중독돼 국민을 잊은 것 같다.

물론 오늘날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도 팬덤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BTS 팬클럽 아미(ARMY)는 많은 연구자의 탐구대상이 될 만큼 집단지성을 발휘해 BTS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계적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소외된 정치인 노무현을 일약 대통령에 당선시킨 노사모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문파도 내가 응원했던 초기엔 집단지성이 작동했다. 과거 민주당 의원들은 언론이 비판하면 확실한 근거가 나오기도 전에 여론재판에 편승했다. 노무현은 그 피해자였다. 나는 큰 잘못이 없다면 언론의 타깃이 된 우리 편 정치인을 팩트와 논리로 옹호해줘야 중도층이 양쪽 설명을 듣고 합리적 선택을 할 것이라는 홍보전략을 제시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문재인을 지켜 대통령이 되는 데 기여했다.

지난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신년 행사인 '문파 라이브 에이드-해피뉴이어 토크쇼'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신년 행사인 '문파 라이브 에이드-해피뉴이어 토크쇼' 모습. [연합뉴스]

문 대통령 취임 후 새로운 지지자가 대거 합류하면서 문파는 불특정 거대 세력이 됐다. 주도권을 둘러싼 문파의 분열이 감지되기는 했지만, 강경파의 본격적 궤도이탈은 지난 2019년 조국 사태 때 시작되었다. 당시 한 여론조사는 국민 70%가 검찰개혁을 원하는 동시에 63%가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지지한 거로 나왔다. 상충해 보이는 이 여론은 우리 국민의 합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도한 검찰 수사를 우려하면서도 조국은 법무부 장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론을 우선했던 나는 서초동 집회 당시 '조국 수호'를 전면에 내세우지 말고 검찰개혁에만 집중해야 다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다 강경파의 집단공격을 받았다.

보수는 변화에 성공해 재집권 

국민은 복잡한 정치현상을 총천연색으로 드러내지만, 강경파는 흑백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 편 아니면 모두 적이다. 대통령 탄핵까지 당했던 보수정당이 불과 5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건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단시일 내에 변화를 이뤄낸 덕분이다. 국민은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정작 민주당은 독재, 친일 세력이라며 적대시했다. 친문 유튜버와 유사 언론이 이런 강경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하는 환경에서 국민은 잊혀갔다. 지지자의 팬덤에 편승하는 소수 선동가는 경쟁적으로 몰상식한 발언을 쏟아냈고, 대다수 민주당 의원은 침묵했다. 다른 의견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강경파의 집단사고는 점점 더 극단화되어갔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즈음 JTBC와의 인터뷰에서 지지하는 사람의 확장을 가로막는 건 진정한 지지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극렬 지지자들은 정반대로 대통령이나 민주당에 쓴소리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한테는 물론 시장 상인에까지 문자 폭탄과 영업 방해용 욕설 전화로 집단린치를 가했다. 이건 부동층 설득을 위한 결집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에 취한 갑질이었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이번 지선 직전 팬덤 정당을 대중정당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한 건 이런 지지자의 갑질 정치를 막겠다는 의미라고 본다.

팬덤과 갑질의 차이는 권력의 유무로 갈린다. 초기 문파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정치인을 당내 경선에서 떨어뜨리는 권력을 맛본 강성 지지층은 공천권을 무기로 정치인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박지현 위원장과 이재명을 지지하던 '개딸(개혁의 딸)'도 이런 비이성적 집단행동에 가세했다.

전문가들은 갑질의 심리적 원인으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목하는데 민주당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민주당에 책임 정치가 실종된 데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갑질 정치가 깔려있다. 선거에 패하고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치고, 언론과 검찰을 악마화해 희생양 삼는다. 강경파는 국민이 왜곡언론에 세뇌돼 민주당을 외면한다며 그들만의 진실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 관람을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책임 대신 언론·검찰 악마화

지난 5월 민주당 지지자들이 성희롱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된 최강욱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화환.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지난 5월 민주당 지지자들이 성희롱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된 최강욱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화환.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이렇듯 소수 선동가만 갑질 지지자의 응원을 받는 동안 민주당은 점점 더 민심과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당이 민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지지자 수는 줄어들어 목소리 큰 기존 당원은 전보다 더 큰 권력을 누리게 된다. 당원과 열성 지지자에게 공천권을 준 민주당의 경선제도는 이런 의미에서 애초부터 잘못 설계한 셈이다.

권력이 있는 곳엔 반드시 권력투쟁이 뒤따른다. 민주당 지지층은 여러 갈래로 찢어져 서로 책임자를 지목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각자 반성문을 쓰고,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줘도 국민 마음 얻기가 어려운데 당내 분열로 서로 총질할 때인가? 선거에 패한 지도부는 물론 선동가, 침묵했던 정치인, 갑질한 당원과 지지자 모두 구체적으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잘못에 어떤 대가를 치를지 릴레이 반성문을 쓰는 건 어떨까.

민주당이 갑질 정치에서 벗어날 해결책은 별로 어렵지 않다. 순수한 팬심으로 정치인을 응원할 수 있도록 미국식 개방경선제도를 도입하면 된다. 공천을 소수 당원이 아니라 다수 국민에게 돌려주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고, 민심과 당심의 일치를 가져오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강성 당원과 지지자는 반성과 함께 개방경선제도 도입에 앞장섬으로써 진정성을 보여주면 좋겠다. 팬덤 정치에 일조한 것으로 지목받는 나부터 반성문을 쓰겠다.

[김남국의 인정불가]팬덤 정치 악마화는 답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6·1 지방선거 패배가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팬덤에 매몰돼 진짜 민심을 놓쳤기 때문이라는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의 칼럼에 대해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팬덤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팬덤 정치의 악마화를 피해야 한다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