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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선거, 선거 쓰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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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사회정책팀 기자

정종훈 사회정책팀 기자

‘옮기자’와 ‘남기자’. 투표함이 열린 6·1 지방선거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선거 막판엔 김포공항 이전이 정쟁의 대상이 됐지만, 그 전까지는 수도권 매립지 이전 때문에 진흙탕 싸움이 펼쳐졌다.

수도권 지자체 폐기물을 묻을 장소를 두곤 인천·경기·서울이 모두 갈렸다. 인천시장 1번, 2번 후보는 현재 인천에 있는 매립지 사용 ‘종료’를 말하면서도, 상대 후보 때문에 매립지를 더 오래 떠안을 수 있다고 서로 깎아내렸다. 새로운 대체 매립지 후보로 거론된 경기 후보들은 ‘우린 아니다, 안 된다’만 반복했다. 마땅한 부지가 없다는 서울에선 내심 현상 유지를 바라며 ‘쓰레기 감축’ 정도로 적당히 넘어갔다.

수도권 매립지뿐일까. 수많은 지자체에서 소각장, 매립지, SRF(생활폐기물 고형연료) 발전소를 ‘옮기자’고 외쳤다. 선거를 틈타 쓰레기 님비(NIMBY, 내 뒷마당에선 안된다는 지역 이기주의)가 분출했다. 여야 후보들은 한 표라도 얻으려고 이른바 혐오시설의 ‘저지’ ‘퇴출’ ‘중단’을 내걸었다. 경쟁 후보와 합종연횡도 마다치 않았다. 사회적 합의나 주민 상생 등을 고민한 ‘남기자’란 말은 설 자리를 잃었다.

지난달 25일 인천의 수도권매립지 3-1매립장에 트럭들이 드나들면서 폐기물을 차곡차 곡 매립하고 있다. [사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지난달 25일 인천의 수도권매립지 3-1매립장에 트럭들이 드나들면서 폐기물을 차곡차 곡 매립하고 있다. [사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혐오 구호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막상 당선되면 우리 동네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 내쫓자던 소각장을 자원순환센터라며 추진하는 식이다. 그러면 또 다른 후보가 다음 선거에서 이를 공격한다. “내 똥 처리해줄 화장실이 싫으니 저 멀리 집 밖에 짓자는 셈”(소각업계 관계자)이란 푸념이 나온다.

주민들에겐 쓰레기를 멀리하자고 소리치면서, 선거운동할 땐 엄청난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후보들이 적극 활용하는 선거용 공보물과 현수막 이야기다. 2주 남짓한 선거운동을 위해 종이와 플라스틱을 마구 쏟아낸다. ‘열일’한 공보물과 현수막은 개표 직후 조용히 버려진다. 일부는 재활용한다지만, 대부분 소각·매립해야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이번 선거에도 여의도 면적 10배에 달하는 공보물이 투입되고, 서울~도쿄 길이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득표율 15%만 넘으면 국가에서 비용을 전액 보전해주니 안 할 이유가 없다. 국민 세금으로 환경파괴를 도와주는 꼴이다. 녹색연합은 “자원도, 세금도 낭비하는 공보물·현수막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꼬집는다.

‘내로남불’이 난무한 쓰레기 선거, 선거 쓰레기의 피해자는 결국 유권자다. 정치권은 인기 영합이 아닌 공론화와 주민 설득에 나서고, 선거로 생산된 폐기물 감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번 선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그들이 바뀌지 않으면 2년 뒤 총선, 4년 뒤 지방선거에서 그들을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