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큰 폭으로 늘면서 지방의회의 대표성 문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법상 무투표 당선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어 유권자들이 이력·정책 등을 인지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데다 투표할 권리도 가질 수 없어서다.
공약 못 알리는 ‘무투표 지방의원’ 409명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 없이 당선된 기초의회 의원은 총 295명으로 전국 무투표 당선 예정자(비례대표 포함 509명)의 58.0%를 차지했다. 시·도의회 등 광역의회 의원도 108명(21.2%)에 달했다. 광역·기초의회 의원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심사권을 비롯해 주민생활과 밀접한 각종 조례안을 심사·의결하는 권한을 가진다.
무투표 당선이 급증하면서 지방선거 때마다 제기돼온 ‘기초의회 무용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무투표 당선은 공직선거법 제190조 2항에 규정돼 있다. ‘후보자 수가 당해 선거구에서 선거할 의원정수를 넘지 않게 된 때는 투표를 하지 않고 선거일에 그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같은 법 275조에는 ‘해당 선거구의 후보자가 그 선거구에서 선거할 정수범위를 넘지 않게 돼 투표하지 않게 된 때는 선거운동을 중지한다’고 돼 있다.
“선거권 근본적 제한” 헌법재판관 1人의 지적
무투표 당선은 당선자가 투표 없이 결정되는 데다 공약도 알릴 수 없다 보니 “국민의 알 권리, 투표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제6회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4년 대구 남구의 한 주민은 남구청장이 무투표로 당선됐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이 선거권, 알 권리,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2014헌마797)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10월 청구인의 심판청구를 기각했지만, 반대의견도 나왔다. 당시 조용호 헌법재판관은 “1인 후보의 경우 유권자의 의사표시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사실상 선거권에 대해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제한을 가하고 있다”며 “무투표 당선을 통해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선출된 지자체의 장은 대표성이 대단히 취약하게 돼 지방자치 제도의 본질과 정당성까지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입법자(국회)는 후보자가 1인일 경우에도 투표를 하고, 일정비율 이상의 득표를 할 경우에만 당선자로 인정하거나 찬반투표를 하는 등 선거권 제한을 최소화하면서도 입법목적을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도 했다.
“조례 발의 ‘0건’ 후보도 재공천”…대표성 논란
여기에 그간 지방선거가 대선·총선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다 보니 “주민 대표성이 떨어지는 후보를 당이 반복적으로 공천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7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자 공천 현황 분석’을 발표하고 “1년에 1건도 조례를 발의하지 않은 지방의원(기초·광역)이 789명인데 이 중 22.2%가 다시 공천됐다”며 “엄격한 공천기준을 적용할 것으로 요구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무투표 당선 예정자 중 전과기록이 있는 비율도 30.1%(153명)에 달했다.
경실련은 “이런 사태의 원인은 각 정당이 도덕성이나 자질·역량 등에 대한 엄격한 검증이 아닌 중앙당에 충성할 인물을 공천했기 때문”이라며 “지방선거 후보들에 대한 정보와 관심 부족으로 유권자들이 정책과 상관없이 정당 이름만을 기준으로 투표한 것도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당 소속 후보자의 비위행위·과실로 인해 단체장·의원직을 상실할 경우 재보궐선거에서 해당 정당이 무공천하는 식의 책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