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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친구의 하인'으로 시작, 독일 궁정가수 된 성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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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쾰른 극장에서 사무엘 윤이 바그너 '라인의 황금'을 공연하던 장면. [사진 사무엘윤]

독일 쾰른 극장에서 사무엘 윤이 바그너 '라인의 황금'을 공연하던 장면. [사진 사무엘윤]

22일(현지시간)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에는 오페라 공연 후 세레모니가 마련돼 있다. 베이스 바리톤인 사무엘 윤(50)을 위한 ‘궁정가수(캄머쟁어ㆍKammersaenger)’ 수여식이다. 사무엘 윤은 이날 오페라 ‘카르멘’에서 투우사인 에스카미요 역으로 출연한 뒤에 궁정가수 칭호를 받는다.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22일 쾰른에서 궁정가수 받아

궁정가수는 성악가에게 영광스러운 지위다. 오페라를 비롯한 음악 무대에서의 공적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행적 등을 따져서 수여한다. 독일의 주 정부별로 전설적인 성악가들이 궁정가수로 이름을 올렸다.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는 1962년 바이에른에서,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는 63년 베를린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89년 함부르크에서 캄머쟁어 칭호를 받았다. 한국 성악가 중에는 2011년 소프라노 헬렌권과 베이스 전승현, 2018년 베이스 연광철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무대에 설 때마다 이름 앞에 궁정가수를 뜻하는 ‘KS’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처음 독일에서 오페라 단역부터 시작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사무엘 윤은 영광스러운 칭호에 앞서 1999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쾰른 극장에서 일종의 수습 단원으로 시작했다. 첫 무대는 베르디 ‘라트라비아타’에서 주인공 비올레타의 친구인 플로라의 이름 없는 하인 역할이었다. 말하자면 조역의 조역이다. 사무엘 윤은 “‘저녁 준비됐어요’ 한마디 노래하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시작해 그는 이듬해 정단원이 됐다. 2012년에는 독일의 자부심인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역을 맡으며 기록을 써내려갔다.

22일 ‘카르멘’은 그의 마지막 쾰른 무대다. 사무엘 윤은 쾰른의 종신 성악가였지만 올 3월 서울대 음대의 교수로 임용됐고 독일 생활을 정리한다. 이 마지막 무대를 궁정가수 수여식과 함께 하는 데 대해 그는 “23년 동안 모든 순간을 함께 한 독일 청중에게 제대로 인사할 기회”라고 했다. “독일 생활 초반기에 ‘카르멘’ 에스카미요 역을 하고 싶어 쾰른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졌었다. 이 역할로 마무리하는 의미가 크다. 그동안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한 오페라 극장에서 20년 넘게 머문 성악가는 독일에서도 흔치 않다. “쾰른은 인구 100만이 넘는 큰 도시다. 도시의 오페라에 대한 애정이 뜨거워 이제는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정도가 됐다.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 여러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었다.” 그는 쾰른에 기반을 두고 런던ㆍ베를린ㆍ파리ㆍ마드리드 등 주요 공연장의 오페라에 출연했다.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사진 사무엘 윤]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사진 사무엘 윤]

사무엘 윤은 “23년 동안 매해 200여번 무대에 섰다”고 했다. 이제 한국으로 옮겨오면서 해외 연주 횟수를 줄인다. 대신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사실 그는 유럽의 무대에 서면서도 한국 성악가들을 정성스레 챙겼다. 유학 오는 후배들의 노래를 들어주고 방향을 알려주는 일을 2004년 시작했다. 사무엘 윤은 “어느 때부터인가 유럽의 도시에 공연하러 가는 대신 후배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무대가 가르치는 일 다음의 일이 됐다”고 했다. 자그마한 역에서 시작해 궁정가수가 된 자신의 경우를 돌아보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희열은 잠시 박수받는 일이다. 하지만 후배들과 인연은 수십 년이다.”

한국에서도 허락된 무대에 부지런히 설 계획이라고 했다. 우선 이달 28일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브람스 독일 레퀴엠 공연에 출연한다. 그는 “한국 오페라 작품에도 자주 참여하면서 국내 오페라 무대를 활성화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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