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새 정부 ‘포용적 무역정책’ 강구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2.05.13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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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무역을 통해 소비자들은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고 더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등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한편, 수출산업은 이익을 얻고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수입증가로 피해를 볼 수 있다. 특히 피해산업의 노동자들은 소득이 감소하거나 일자리를 잃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경우 정부는 무역으로 피해를 입은 산업, 기업, 노동자에게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재정적인 보상을 해준다. 이 모든 효과를 종합하면 무역은 국가전체로 볼 때 이득이 된다. 이것이 전통적인 무역이론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국가에서 실업 증가와 소득분배의 악화 원인이 세계화와 무역에 있다는 시각이 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고 외국으로부터 수입이 늘어나 국내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을 자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유인책과 수입보다 국내 생산을 더 중요시하는 조치들이 많이 채택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무역이론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무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증가
보호무역주의가 문제 해결 못해
경제 지속성장 위해 무역 긴요
피해계층에는 실질적 도움 줘야

무역이론에 의하면 무역의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다. 그러나 소비자 개인이 피부로 느끼는 혜택은 미미할 수 있다. 반면 수입이 늘어 특정산업이 피해를 보는 경우 해당산업의 종사자들은 무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게 된다. 정부가 도와준다고 해도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늘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무역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중소기업도 많이 있다. 여기에 더해 보호무역주의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까지 나오면서 무역에 대한 시각은 점점 더 부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해서인지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는 ‘포용적 무역정책’의 중요성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포용적 무역정책’의 개념은 무역이론이 틀렸다기보다 무역의 혜택이 모든 구성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부족했다는 성찰에서 나온 것이다. 즉 무역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나아가 고조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포용적 무역정책’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포용적 무역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자 중심 무역정책(Worker-centric Trade Policy)’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자국이 맺는 무역협정에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포함시켰으며 중국 ‘위구르’ 지역에서의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무역상대국의 부당하고 불공정한 노동환경에서 생산된 상품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것을 막아 자국의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무역활동 참여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여성과 중소기업의 무역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EU도 ‘모두를 위한 무역(Trade for All)’ 전략을 발표했으며 동 전략의 기본은 무역을 함에 있어서 공정한 경쟁의 장과 노동, 환경 및 소비자의 보호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EU는 이를 위해 기업, 노동자, 소비자의 다양한 관심사항을 무역정책에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EU는 역내 기업들로 하여금 공급망 내 환경침해와 강제노동 개입여부를 감시하도록 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중소기업에게는 회원국 정부가 정보제공과 재정지원을 할 수 있게 했다.

영국도 최근 ‘포용적 무역정책 연구소(Center for Inclusive Trade Policy)’를 설립하는 등 정치, 사회, 지역,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적 무역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캐나다는 무역활동 참여가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 중소기업 등에게 무역의 기회와 혜택이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수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도 ‘모두를 위한 무역’ 자문위원회를 설치해서 노동자권리 및 환경보호, 양성평등제고, 중소기업의 무역참여 확대, 원주민에 대한 혜택부여 등 관련 정책제안을 수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역을 통해 기적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며 앞으로도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무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은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보호무역주의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우리나라는 다자무역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불거진 시장개방 이슈로 인해 사회가 분열되는 등 심각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무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해소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 출범한 우리 정부도 앞에서 살펴본 선진국과 같이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한 무역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FTA 협정 체결 등 앞으로의 무역정책은 소비자 보호는 물론이고 농민, 노동자, 중소기업, 환경보호, 양성평등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수립·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무역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포용적인 무역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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