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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흔적, 사진으로 담다…"두번째 가족" 장기기증인 사진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장기기증인으로부터 간을 이식받은 김리원양의 예전 모습. 2017년 7월 간을 이식받고 일반 병실로 올라온 리원양의 모습이다. 김리원양 부모님 제공

장기기증인으로부터 간을 이식받은 김리원양의 예전 모습. 2017년 7월 간을 이식받고 일반 병실로 올라온 리원양의 모습이다. 김리원양 부모님 제공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김리원(6)양은 생일이 두 개다. 하나는 리원양이 세상에 처음 나왔던 2016년 5월 20일, 다른 하나는 리원양이 간을 기증받아 ‘제2의 삶’을 시작한 2017년 7월 6일이다.

리원양은 생후 78일만에 담도 폐쇄증이라는 난치병을 진단받았다. 태어나고 꼬박 14개월 동안 그와 가족들은 병원 근처를 떠나본 일이 없다. 입원하고 퇴원하는 일상이 반복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에는 복수가 차올랐다. 힘겨운 투병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한 뇌사 장기기증인이 리원양에게 건강한 간을 선물했다. 리원양과 그의 어머니 이승아(34)씨는 그 기증인을 ‘천사님’이라고 부른다.

장기기증인으로부터 간을 이식받은 김리원양이 11일 사진전에 참석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양수민 기자

장기기증인으로부터 간을 이식받은 김리원양이 11일 사진전에 참석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양수민 기자

‘천사’의 흔적…사진으로 담았다

11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라메르에서 진행된 국내 첫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한 특별 사진전 '장미하다' 오픈식 중 장기기증 유가족 모임 도너패밀리 회원들과 이식인 가족들이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뉴스1

11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라메르에서 진행된 국내 첫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한 특별 사진전 '장미하다' 오픈식 중 장기기증 유가족 모임 도너패밀리 회원들과 이식인 가족들이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뉴스1

리원양에게 두 번째 삶을 선물하고 떠난 ‘천사님’ 외에도,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린 장기기증인은 많다. 이들과 유가족의 사진이 종로구 관훈동 한 갤러리에 걸렸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11일 오전 장기기증인·이식인과 그의 가족을 위한 사진전 ‘장미하다’ 오픈 기념식을 열고 이들의 일상이 담긴 사진 전시를 시작했다. 천사가 살아있을 때의 사진, 작가 12명과 배우 박세완씨 등이 찍은 유가족과 이식인 등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장미하다는 ‘장대하고도 아름다운(美) 영웅들을 기억해달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날 행사에는 천사들의 남겨진 가족이 참석했다. 2011년 장기 기증을 통해 4명의 생명을 살린 故 이종훈 씨(당시 33세)의 어머니 장부순(79)씨, 결혼하고 15년 만에 얻은 첫째 아들 故 왕희찬 군(당시 3세)을 떠나보내며 5명의 생명을 살린 아버지 왕홍주(58)씨, 4대 독자인 아들을 먼저 보낸 김일만(76)씨 등이다. 일만씨의 아들 故 김광호(당시 29세)씨는 간과 심장, 폐와 조직을 모두 기증해 4명의 삶을 살렸다.

장기기증인의 유가족 장부순씨가 11일 사진전에 참석해 먼저 떠나 보낸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양수민 기자

장기기증인의 유가족 장부순씨가 11일 사진전에 참석해 먼저 떠나 보낸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양수민 기자

기증인의 유가족들은 “(기증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종훈씨의 누나(52)는 “동생을 보낸 게 2011년이다. 그때는 시선이 더 안 좋았다”며 “‘얼마를 받았길래 장기를 기증한 거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일만씨도 “병원에서 장기기증 권유를 했는데, 하겠다고 선뜻 말을 못했다”고 토로했다. 갑작스럽게 죽은 아들의 몸에 칼까지 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그의 생각은 아들이 남긴 ‘헌혈증 3장’을 보고 바뀌었다. 일만씨는 “(헌혈증을) 딱 보는데 기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들의 일부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 살렸으면”

1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라메르에서 진행된 국내 첫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한 특별 사진전 '장미하다' 오픈식 중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故왕희찬 군의 여동생인 왕수현 양(왼쪽)이 오빠의 생명을 이어 받은 이식인들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을 이식인 대표 김리원 양에게 선물하고 있다. 뉴스1

1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라메르에서 진행된 국내 첫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한 특별 사진전 '장미하다' 오픈식 중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故왕희찬 군의 여동생인 왕수현 양(왼쪽)이 오빠의 생명을 이어 받은 이식인들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을 이식인 대표 김리원 양에게 선물하고 있다. 뉴스1

국내 장기 이식 대기 환자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한국에서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4만6749명. 2019년 4만253명, 2021년 4만5830명으로 대기자는 늘고 있다. 반면 연간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해 지난해는 442명이었다. 지난해 이식을 대기하다 사망한 환자는 하루 평균 6.8명이었다.

유가족들은 사진전에 참여한 이유를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장부순씨는“1년에 한 번씩 아들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성모병원에 간다. 가서 보면 (이식) 대기자들이 늘어서있다”며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인의 유가족, 장기를 이식받은 이식인의 가족들은 장기 기증 약속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19년 폐를 이식받은 김왕석(65)씨도 기증을 약속했다. 김씨는 “(기증자는) 생명의 은인이자 두 번째 가족이다. 은혜를 받았는데 나도 당연히 기증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희찬군의 동생 왕수현(12)양도 미래에 장기 기증을 희망한다.

김소정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홍보국장은 “장기 기증이 가져오는 막연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인식을 유가족과 이식인들의 일상이 담긴 사진으로 극복하고 싶다”며 “이 마음이 대중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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