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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자유가 자유 키운다" 尹 언어의 취임사, 이렇게 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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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대신 쓸 수 없는 연설문이다. ‘윤석열의 언어’가 담겼다.”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16분 37초 동안의 취임 연설을 마치자 대통령실 참모실 사이에선 이같은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자유’라는 단어가 35번 등장한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누가 대신 써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실제 취임식 단상에 연설문이 오르기까지 윤 대통령은 한 땀 한 땀 자신의 언어로 글을 썼다고 한다. 이각범 카이스트 명예교수와 이재호 전 한국출판문화진흥원장이 이끈 취임사준비위원회는 16명의 토론을 거쳐 취임사 초안을 만들어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윤 당선인은 이를 토대로 글을 다듬기 시작했고 김동조 연설기록비서관이 보좌하며 취임 일주일 전 즈음에 대략의 연설문 형체는 완성됐다. 퇴고 과정에서 연설문 길이는 당초 실무진이 올린 30분 길이에서 절반 정도로 줄었다.

이같은 과정에서 취임사는 사실상 새로 쓰여지는 수준으로 재창조됐다고 윤 대통령 주변은 전했다. 윤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와 달리 자신의 철학을 취임 연설에 담고 싶은 생각이 강했던 까닭이다.

윤 대통령은 연설문을 고치는 과정에서 주변에 “자유가 자유를 키운다”는 말을 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사회가 자유의 가치 대신 집단의 가치를 강조하는 분위기로 흐른 데 대해 윤 대통령이 문제 의식을 가진 듯한 느낌이었다”며 “그렇다고 과거 정부를 비판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자유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잘 담기 위해 노력한 걸로 보였다”고 말했다. 취임사에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도 자유가 축소돼 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우려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자신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연설문을 직접 쓰는 건 윤 대통령의 원칙이자 습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6월 29일 정치 참여 선언을 할 때나 지난해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을 때, 그리고 지난 3·9 대선에서 당선 수락 연설을 할 때 실무자의 초안을 직접 고쳐서 마무리지었다. 대선 기간에도 실무자가 쓴 유세문 대신 자신의 언어 습관에 맞게 현장에서 직접 연설을 하는 일도 잦았다.

취임사에 자유가 강조된 건 윤 대통령이 그동안 자유의 가치에 관해 천착한 영향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과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주장에 공감해왔다. 시장에서의 자유를 강조하는 이들은 “경제적 자유 없이는 정치적 자유도 없다”는 주장을 폈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성취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된다”고 적기도 했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생각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신 국민의힘을 선택하는 데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3월 4일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윤 대통령은 잠행을 하던 지난해 6월 주변에 민주당 강령 등을 언급하며 “자유를 바라보는 관점이 나와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자신의 핵심 가치를 바라보는 결이 다른 만큼 민주당을 선택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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