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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윤석열 새 정부의 중국 상대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내일이면 윤석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지도자가 바뀌니 달라지는 게 많을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변화가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 정책은 국민 정서와는 다른 길을 걸은 측면이 많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상대적으로 중국에 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당당한 외교’ ‘상호 존중’ 같은 표현이 나온다. 협력의 훈풍보다는 충돌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 중국이나 바라는 바는 아니다. 양측 모두 어떻게 하면 갈등을 빚지 않고 국익을 실현할 것인가의 현실주의적 사고를 한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이룰 건가. 이와 관련 우리 새 정부가 시진핑(習近平)의 중국 정부를 상대할 때 참고했으면 하는 세 가지 점을 짚고 싶다.

윤석열 새 정부의 대중 정책 수립에서 우선 고려할 점은 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1인 체제로 돌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포토]

윤석열 새 정부의 대중 정책 수립에서 우선 고려할 점은 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1인 체제로 돌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포토]

첫 번째는 현재의 중국이란 나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1인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점을 우선 염두에 두고 대중 정책을 짜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명목적으론 공산당 내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해 나라를 이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론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시진핑의 1인 천하로 바뀌었다. 모든 정책이 그를 따라 움직인다. 봉쇄로 대표되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전역에서 비명이 나오지만, 중국 당국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시 주석의 업적으로 여겨지는 ‘제로 코로나’ 정책에 흠집이 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보복은 왜 아직도 계속되나. 시 주석이 2014년 한국 방문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사드를 배치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 주석의 요청이 거절되자 중국은 최고 지도자의 존엄이 무시된 것으로 간주해 상식 밖의 보복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민심이 중국으로부터 떠났지만, 중국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 주석의 체면을 더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의 모든 정책은 이처럼 시진핑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더 생각해야 하는 건 그런 1인자 시진핑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11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전을 전달받았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11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전을 전달받았다. [연합뉴스]

중국몽(中國夢) 달성이나 공동부유(共同富裕) 실현 등은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이 가장 공을 들이는 건 자신의 권력 유지다. 그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마련해놓은 ‘최고 지도자 10년 집권’의 규칙을 깨고 있다. 오는 가을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 때 또다시 총서기로 선출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어떻게 장기 집권할 것인가가 그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도 그게 시진핑의 장기 집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부로 결판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 정부로선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며 대중 정책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두 번째는 그런 중국과의 소통 방법으로는 우리 최고 지도자가 직접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방식보다는 중국에 정통한 참모진을 두고 이 참모진을 통해 중국을 상대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최근 막말 등 공세적인 태도의 전랑외교(戰狼外交)를 펼치고 있지만 사실 중국이 가장 선호하는 소통 스타일은 자신의 말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상대국 인사를 통해 해당국과 거래하는 방식이다. 중국은 자신의 제안이 거절되는 걸 두려워한다. 이 때문에 중국의 입장을 가장 잘 헤아려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물밑에서 조율하기를 바란다. 모든 외교가 그렇지만 사전 조율은 나쁘지 않다. 새 정부 입장에서도 이런 소통 방식을 통해 중국의 의중을 비교적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윤석열 새 정부는 중국과 상대할 때 최고 지도자가 직접 입장을 표명하기보다는 중국에 정통한 참모진을 두고 이를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겠다. [뉴시스]

윤석열 새 정부는 중국과 상대할 때 최고 지도자가 직접 입장을 표명하기보다는 중국에 정통한 참모진을 두고 이를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겠다. [뉴시스]

세 번째는 중국과 거래할 때 시한을 설정하는 것과 같은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다. 우리가 중국과 1992년 수교한 이후 처음으로 얼굴을 붉힌 게 2000년 마늘분쟁 때다. 우리 정부가 농가 보호를 이유로 900만 달러 규모의 중국산 마늘에 대해 수입 제한 조치를 취했다가 중국으로부터 5억 달러에 상당하는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출길이 막히는 보복을 당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베이징으로 떠나는 협상단에게 ‘당당하게 빨리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방점은 ‘빨리’에 찍혔고 우리 협상단은 완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만만디(慢慢的, 천천히)’의 나라 중국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한·중 간엔 시진핑 주석의 방한 문제가 현안으로 걸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두 차례나 중국을 찾았으니 이번엔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할 차례란 논리다. 이 문제는 새 정부가 추구하는 ‘당당한 외교’와 궤를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시 주석의 방한과 관련해 새 정부가 바라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한·중 협의 결과 우리가 원하는 시점에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지면 최상이다. 그러나 뜻대로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나중을 보는 게 낫다. 무리하게 목표 달성에 나섰다간 다른 큰 걸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상대할 때 시한을 설정하는 우를 범하면 중국의 페이스에 말리기 쉽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을 상대할 때 시한을 설정하는 우를 범하면 중국의 페이스에 말리기 쉽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은 흔히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는 말을 듣는다. 또 시간은 늘 중국 편이라고 생각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나라다. 이런 중국을 상대할 때는 ‘돼도 좋고 안 돼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시한 내 무엇을 꼭 이루려고 하는 게 중국에 읽히고 나면 그다음은 중국 페이스에 말려들 가능성이 크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년의 해다. 기회보다는 도전 요인이 많아 보인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중국은 어디로 이사 가지 않는다. 차분하게 상호존중의 대등한 입장에서 하나하나 신뢰를 쌓아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겠다.

중국은 시진핑 1인 천하란 점 염두에 두고 대중 정책 짜야 #시진핑 최대 관심사인 장기집권에 대한 야심 고려하며 #‘만만디’ 중국 상대할 때 시한 설정하는 잘못 범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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