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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 영향력 침투…한국은 세계 12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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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근래 세계에 중국 경계령이 내려진 듯하다. 지난 1월 캐나다 안보정보청은 국회의원들에게 경고를 발했다. 외국과 그 대리인이 국회의 의정과 정부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외국은 중국을 가리킨다. 2월 중순엔 노르웨이가 2022년의 공공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중국이 대폭적인 투자를 통해 대만이나 홍콩, 티베트 문제 등에서 노르웨이의 중국 비판을 막으려 한다고 했다. 며칠 후 프랑스 언론은 재무감찰국의 보고서를 인용해 하얼빈공업대학 등 중국의 국방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중국 세력이 프랑스 고등교육기구 침투를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신분으로 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왕치산 국가부주석을 만났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신분으로 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왕치산 국가부주석을 만났다. [뉴시스]

최근엔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가 화제다. 친중의 소가바레 정권이 중국의 무장 경찰을 솔로몬제도에 파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안보협정을 중국과 맺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제도는 미국의 군사거점인 괌 뒤쪽, 호주의 북동쪽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과 호주가 발끈한 것은 불문가지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중국의 영향력이 세계로 뻗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중국의 영향력이 많은 경우 부정적으로 비친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중국 사회의 모습과 관계가 깊다. 언론의 자유가 사라진 채 권위주의적 통제가 횡행하는 중국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그런 중국의 입김이 커지는 것에 대한 반감이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한국의 정치와 외교, 경제 등 9개 영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침투를 표시한 차이나 인덱스 도표. 한국은 36개 조사 대상 국가 중 12위로 나타나 중국의 영향력 침투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만민주실험실 홈페이지 캡처]

한국의 정치와 외교, 경제 등 9개 영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침투를 표시한 차이나 인덱스 도표. 한국은 36개 조사 대상 국가 중 12위로 나타나 중국의 영향력 침투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만민주실험실 홈페이지 캡처]

이런 가운데 지난달 말 대만의 비영리단체인 ‘대만민주실험실’이 발표한 ‘차이나 인덱스(중국의 영향력 지수)’가 눈길을 끈다. 차이나 인덱스는 중국이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을 이용해 세계 각국에 침투하고 있는 상황을 조사해 지수로 표시한 것이다. 1차로 2021년 3월부터 8월까지 약 반 년간에 걸쳐 세계 8개 지역 36개 국가를 대상으로 첫 번째 조사한 결과를 이번에 발표했다. 중국의 영향력 분석을 위해 36개 국가의 ‘미디어, 학술, 경제, 사회문화, 군사, 법 집행, 과학기술, 정치, 외교’ 등 모두 9개 영역에 미치는 중국의 입김을 조사했다. 각 영역은 또 11개 지표로 세분화했다. 예를 들어 경제 영역에선 중국 정부가 어떻게 경제적인 실력을 이용해 각국의 기업과 정계 인사를 협박해 중국의 목적을 달성하는지 등을 분석했다.
대만민주실험실은 해당 연구는 각국의 학자, 전문가, 기자, 연구원, 싱크탱크, 민간 기구, 오피니언 리더 등 다양한 사람을 상대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도 포함된 이번 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우선 지역적으로 동남아가 중국의 부당한 정치·경제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입김이 제일 크게 미치는 곳은 동남아에서 가장 친중 국가 지도자인 훈센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였다. 2위는 싱가포르, 3위는 태국이었다. 4위는 놀랍게도 남미의 페루였는데 미국이 방심한 틈을 타 미국의 뒷마당을 뚫고 들어간 중국이 중남미에서 자원 사냥에 나서고 있다고 민주실험실은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한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은 발언 말미에서 “민감한 문제의 타당 처리”를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한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은 발언 말미에서 “민감한 문제의 타당 처리”를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뉴스1]

5위는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 6위는 필리핀, 7위는 타지키스탄, 8위 말레이시아, 9위 대만, 10위 호주로 조사됐다. 한국은 11위인 카자흐스탄에 이어 12위로 나타났다. 미국이 18위에 위치했고, 일본은 28위로 중국의 영향력이 그다지 먹히지 않는 국가로 드러났다. 한국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역은 어딘가. 이번에 조사한 36개 국가의 평균과 비교한 결과 경제 영역이 단연 1위로 나타났다. 36개 국가 평균의 중국 영향력이 42%인데 반해 한국은 72.7%로 30% 이상이 높았다. 한국이 두 번째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은 법 집행 영역이었다. 세계 평균 40%에 반해 우리는 62.5%를 기록했다. 법 집행은 중국과의 사법 공조를 말하나 여기엔 외국인이 중국 공안에 임의로 붙들리거나 중국 국적의 인사가 중국으로 인도되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 국내 정치와 외교도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정치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세 번째에 위치했고 외교는 네 번째에 올랐다. 그다음 다섯 번째로 학계가 꼽힌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세계 평균 39%에 비해 우리는 47.7%나 됐다. 여섯 번째는 과학기술 분야였고 일곱 번째가 언론으로 세계 평균 36%를 약간 웃도는 36.4%를 기록했다. 중국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곳으론 사회와 군사 분야로 이 두 분야는 세계 평균보다 아래였다. 대만민주실험실은 디지털 전체주의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2019년 설립됐다.

대만민주실험실은 최근 세계 각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침투 지수를 나타내는 차이나 인덱스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한국은 36개 국가 중 12위로 나타났다. [중국 차이신망 캡처]

대만민주실험실은 최근 세계 각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침투 지수를 나타내는 차이나 인덱스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한국은 36개 국가 중 12위로 나타났다. [중국 차이신망 캡처]

선보양(沈伯洋) 대만민주실험실 이사장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악의적인 중국의 영향력 행동과 가짜 정보 활동 및 그 영향’에 대처하기 위해 이뤄졌다. 세계에 경각심을 일깨우겠다는 취지란 것이다. 선 이사장은 이번 1차 조사 결과는 지난 4월 22일까지의 분석을 토대로 한 것으로 올해 연말까지 세계 80개 국가에 대한 평가 작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매년 순위가 바뀌게 된다고 한다. 이번 대만 민간단체의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국은 흔히 “한국은 너무 쉽다”는 말을 한다. 중국이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 데는 우리 책임이 클 것이다. 잘 지내는 것과 속도 없는 건 다른 문제다.

대만민주실험실이 세계 36개 국가 대상으로 실시한 #중국 영향력 침투 뜻하는 차이나 인덱스 조사에서 #한국은 경제와 법 집행, 정치 영향력 커 12위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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