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마스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바람·새·달은 나무의 친구다. 바람은 마음 내킬 때 찾아와 기분에 따라 살랑거리기도, 세차게 몰아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새도 제멋대로 찾아와 둥지를 틀고 머물다 어느새 말도 없이 획 날아가 버린다. 달은 한결같이 정해진 때 찾아와 고독한 밤을 함께 지내고 간다.

달이 의리 있는 친구라면 바람·새는 감탄고토(甘呑苦吐) 친구다. 조선 후기 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집필한 속담집인 『이담속찬』에 등장하는 감탄고토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이다. 이익에 따라 교묘하게 태도를 바꾸는 이기적인 행태를 꼬집는다.

2년여 만에 마스크를 벗었다. 아직 실외만이지만, 실내 의무 착용 해제도 코 앞이다. 전 국민이 탈 마스크를 반기지만, 속이 타들어 가는 이들이 있다. 마스크 생산 업체다. 2년 전 이맘때 마스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2020년 1월) 후 개당 1000원 수준이었던 보건용 마스크값은 1만원까지 치솟았고 그나마도 없어서 못 샀다. ‘마스크 대란’이었다. 정부는 그해 3월 ‘공적 마스크 제도’를 도입했다. 마스크를 공공재로 선언하고 직접 생산·공급 관리에 나섰다. ‘마스크 5부제’를 도입, 정해진 날짜·장소·수량을 정해서 판매했다.

생산도 독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기도 평택의 한 마스크 공장을 찾아 “제가 분명히 약속드리겠다”며 “나중을 걱정하지 말고 충분히 생산량을 늘려 달라”고 당부했다. “수요가 줄어도 남는 물량을 정부가 구매해 비축하겠다”고 격려했다.

업체들은 생산 설비를 늘리고 직원을 더 뽑아 밤낮으로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적 마스크 제도 시행 5개월간 7억개가 넘는 마스크를 쏟아냈다. 이후 돌아온 것은 경영 악화다. 남는 물량을 비축용으로 사겠다던 정부는 딴청이고, 약속했던 해외 판로 지원은 흐지부지다. 137곳(2020년 1월)에서 1595곳까지 늘어난 업체 중 실제 운영 중인 곳은 480여 곳에 불과하다. 마스크값은 생산 원가의 절반 수준인 개당 100원까지 떨어졌다.

이익을 노렸든, 억지로 움직였든 이들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마스크 수급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런데 약속 이행은커녕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발생한 부작용을 모르쇠로 발뺌한다면 ‘제2의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을 때 누구의 협조를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