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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역사상 '최단시간 최대손실'…몰락한 '한국계 신화' 빌 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몰락한 한국계 천재 투자자 빌 황(왼쪽)이 27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보석심사를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몰락한 한국계 천재 투자자 빌 황(왼쪽)이 27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보석심사를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연방법원 앞에 취재진이 모였다. 한국계 투자자 빌 황(한국명 황성국)이 법원에서 나오자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월가의 성공 신화'이자 '천재 투자자' 빌 황의 몰락이 눈앞에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한 때 월가의 성공한 재외동포 투자자의 상징이었던 빌 황은 내로라하는 세계 투자은행에 무려 100억달러(약 12조원)의 손실을 입혀 이날 법정에 섰다. 블룸버그 통신은 그의 투자 실패에 대해 '이틀 만에 200억달러를 잃어버린 빌황'이란 기사를 통해 "현대 금융 역사에 기록될 만한 최단 시간 손실 중 하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황 씨를 기소한 뉴욕남부지검은 황 씨의 증권 사기 혐의가 인정될 경우 최대 징역 20년에 처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목회자 아버지와 선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황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명문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를 졸업한 뒤 카네기멜런대 MBA 과정을 거쳤다. 이후 현대증권 뉴욕법인에서 일하다가 '헤지펀드계의 선구자'로 불리는 줄리언 로버트슨의 눈에 들어 '타이거 매니지먼트'에 합류했다. 빌 황은 로버트슨의 수제자로 통하며 아시아 투자를 맡아 '타이거 아시아'를 운영했고, 한 때 '리틀 타이거' 혹은 '새끼 호랑이(Tiger Cub)'란 별명으로 불렸다. 그가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경영했던 타이거 아시아는 50억달러를 운용하는 대규모 헤지펀드로 성장했다.

지난 2012년 7월 6일 국군포로 자선사업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빌 황(왼쪽)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유영복 옹이 감사 인사말을 하려 하자 높게 올라가 있던 마이크를 낮춰 드리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2년 7월 6일 국군포로 자선사업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빌 황(왼쪽)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유영복 옹이 감사 인사말을 하려 하자 높게 올라가 있던 마이크를 낮춰 드리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그는 지난 2012년 내부 정보를 이용해 펀드를 운용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타이거 아시아 또한 문을 닫았다. 당시 그는 4400만달러(약 500억원)를 배상하고 발생 이익 1600만달러를 몰수당했다. 월가 투자은행들이 그후 그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한동안 황 씨를 월가에서 찾아보긴 힘들었다고 한다. 황 씨는 타이거 아시아를 정리한 뒤에도 이듬해인 2013년 개인의 자금을 운용하는 패밀리 오피스 '아케고스 캐피털'을 설립했지만, 투자은행들은 몸을 사리느라 아케고스 캐피털과는 일절 거래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 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황 씨에 대한 금융거래 제한 조치를 해제하면서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월가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다. 막대한 신용대출 수수료가 탐났던 것일까. 그와의 거래를 꺼리던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모건스탠리 등 쟁쟁한 투자은행들도 다시 황 씨를 다시 고객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결국 황 씨는 더 많은 돈으로 더 위험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아케고스 캐피털은 파생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와 차액거래(CFD) 계약을 통해 보유자산 100억 달러의 5배가 넘는 500억 달러(약 63조 원) 상당을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2021년 3월 23일 아케고스가 자금을 빌려 투자한 주식이 급락하게 되자 빌 황에게 투자한 은행들은 현금을 추가로 요구했다. 펀드의 투자 원금에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될 경우, 이를 보전할 수 있도록 증거금을 더 요구하는 이른바 ‘마진 콜’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아케고스는 이미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결국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아케고스와 거래하던 국제 금융회사들은 100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된다. 가장 손실 규모가 큰 크레디트스위스는 55억달러(약 7조원)에 달한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손실액은 9억1100만 달러(약 1조1000억 원), 일본 노무라증권은 28억5000만 달러(약 3조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됐다.

2021년 3월 월가의 대규모 '마진콜 사태'를 발생시킨 빌 황(가운데)이 27일 미국 뉴욕 연방법원 앞에서 취재진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1년 3월 월가의 대규모 '마진콜 사태'를 발생시킨 빌 황(가운데)이 27일 미국 뉴욕 연방법원 앞에서 취재진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검찰은 황 씨가 아케고스 포트폴리오에서 공개 거래 증권 가격을 불법적으로 조작하고 투자은행 등을 속여 이득을 취하려는 계획에 밀접하게 연루됐다고 보고 있다. 아케고스 자산 규모를 크게 부풀렸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아케고스의 레버리지 비율은 한때 1000%에 달하기도 했다. 검찰은 아케고스의 차입 과정을 설명한 뒤 "일반적인 사업이라든지, 복잡한 투자기법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황 씨는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황 씨의 변호사는 성명을 통해 "의뢰인은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며 "또한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의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원도 황씨에게 보석을 허가해, 황 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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