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 단종 흔적 창절서원, 480→8581만원 종부세 폭탄, 왜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05.07 05:00

업데이트 2022.05.0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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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있는 '창절서원'은 지난해 말 예상치 못했던 일로 유명세를 치렀다. 비영리 사단법인 창절서원에 8581만 원에 달하는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된 일이다. 1년 전(480만 원)보다 17.8배나 늘어난 종부세에 창절서원 측은 당황했다. 창절서원은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死六臣) 등 충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e즐펀한 토크] 박진호의 강원도 감자bow

비영리 사단법인에 세금 폭탄이 떨어진 건 대폭 강화된 종부세 부과세율 때문이었다. 지난해 강화된 법인 종부세율이 기존 최고 3.2%에서 6%로 오른 데다 토지 임대료와 상가 건물에 대한 부과까지 이뤄지면서 세금이 폭등했다. 당시 창절서원은 법인 소유의 토지 임대료와 상가 건물 등 41건의 공시지가가 12억 원으로 산출됐다.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창절서원은 비운의 왕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등 충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1685년에 창건됐다. 서원은 최근 충신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충절목을 심었다. 사진 창절서원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창절서원은 비운의 왕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등 충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1685년에 창건됐다. 서원은 최근 충신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충절목을 심었다. 사진 창절서원

"수재민들 위해 토지 제공했는데…" 

세금 폭탄을 맞은 창절서원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1972년 영월에 큰 홍수가 날 당시 영월군의 요청으로 서원 소유의 밭을 택지화한 게 화근이 됐다고 한다.

서원 측은 “밭을 택지화한 후 수재민을 위해 군 예산으로 집을 지었고, 서원은 토지 임대료만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원 소유의 땅을 자치단체의 필요에 의해 택지화했고, 땅값 상승과 함께 공시지가도 오르면서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는 취지다.

결국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세무당국의 특례 적용에 따라 세금이 재조정됐다. 이후 서원 측이 1046만 원을 납부하는 선에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2007년 단종문화재 당시 단종국장 재현 모습. 사진 동강사진박물관

2007년 단종문화재 당시 단종국장 재현 모습. 사진 동강사진박물관

사육신과 생육신 등 '충신 10명' 위패 모신 곳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강원도 안팎에선 단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창절서원에 대해 다시 관심이 쏠렸다. 창절서원은 사육신과 생육신(生六臣) 등 충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1685년에 창건됐다.

1456년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류성원·유응부 등 사육신 6인과 김시습·남효온 등 생육신 2인, 순절 충신 박심문과 단종 시신을 모신 엄흥도 등 10인의 위패가 있다.

지난달 24일 찾은 창절서원엔 충절의 상징인 소나무 10그루가 정성스레 심겨 있었다. 2m 안팎의 크기, 수령 10년가량인 나무의 이름은 충절목(忠節木)이다. 10그루 소나무 앞에는 충신들의 본관과 시호(諡號)를 표기한 10위의 표지석도 함께 설치돼있다.

강원 영월군에 있는 창절서원은 비운의 왕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등 충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1685년에 창건됐다. 사진 창절서원

강원 영월군에 있는 창절서원은 비운의 왕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등 충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1685년에 창건됐다. 사진 창절서원

'보물 승격' 추진 대상 12건에 포함

‘창절서원 창절사’는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여부로도 최근 재부각됐다. 문화재청은 최근 창절서원에 대한 현지조사를 마치고, 승격 추진 대상 12건의 조사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보고서 작성이 완료되면 전문가 지정 조사와 문화재위원회 등을 거쳐 지정 예고를 하게 된다. 문화재청은 창절서원에 대한 검토 결과가 올해 안에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 제23~26조의 규정에 따라 지정한 문화재를 말한다.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국가무형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로 분류된다.

창절서원 정태교 원장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 그동안 도비와 군비로 충당하던 시설보수 비용 70%를 국비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며 “창절사는 역사적 가치가 충분해 국가지정문화재로 손색이 없는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단종 탄신 580주년을 맞아 권오창 화백이 제작한 단종 어진(작품 규격 가로 120㎝, 세로 200㎝). 정부표준영정 제100호로 공식 지정됐다. 박진호 기자

단종 탄신 580주년을 맞아 권오창 화백이 제작한 단종 어진(작품 규격 가로 120㎝, 세로 200㎝). 정부표준영정 제100호로 공식 지정됐다. 박진호 기자

영월엔 단종의 삶 속으로 '시간여행'할 곳 많아

영월에는 창절서원처럼 단종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 1일 막을 내린 ‘제55회 단종문화제’다. 행사가 열렸던 단종의 묘(장릉)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다.

영월군은 1967년부터 장릉에서 단종문화제를 열어왔다. 장릉 제례와 민속신앙, 칡 줄다리기, 국장 재현을 통해 단종의 영원한 영면과 재림을 기원해왔다.

앞으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는 육지 속의 섬 청령포도 단종의 삶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이다. 열일곱 나이에 숙부인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 단종의 유배지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령포는 560여년이 흐린 지금까지도 고요하다.

열일곱 나이에 숙부인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앞으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린다. 박진호 기자

열일곱 나이에 숙부인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앞으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린다. 박진호 기자

단종 유배지 청령포 2004년 '천 년의 숲' 지정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청령포에 들어서자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 숲은 2004년에 산림청이 천 년의 숲으로 지정할 만큼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청령포에서 만난 김인성(60·경기 남양주시)씨는 “어린 왕이 이렇게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삶이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소나무 숲 안으로 들어가자 단종이 머물던 기와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단종어소가 눈에 들어왔다.

30m 높이 단종의 한이 서려 있는 관음송(觀音松). 수령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청령포에서 유배 생활하면서 이 나무에 걸터앉아 서울 쪽을 바라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박진호 기자

30m 높이 단종의 한이 서려 있는 관음송(觀音松). 수령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청령포에서 유배 생활하면서 이 나무에 걸터앉아 서울 쪽을 바라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박진호 기자

수령 600년 '관음송'…단종이 오열하던 곳

안쪽으로 더 들어간 숲속엔 유독 우뚝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30m 높이의 이 나무는 단종의 한이 서려 있는 관음송(觀音松)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소나무 중에서 가장 키가 큰 관음송은 1.2m 정도에서 두 개로 갈라져서 자라 학의 날개처럼 펴져 있다.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유배 생활하면서 이 나무에 걸터앉아 한양 쪽을 바라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관음송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도 단종이 이 나무에 걸터앉은 모습을 보았으며(觀),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音) 관음송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강원 영월군 장릉에서 열린 제55회 단종문화재 모습. 사진 영월군

지난달 30일 강원 영월군 장릉에서 열린 제55회 단종문화재 모습. 사진 영월군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난 단종은 할아버지인 세종대왕의 사랑을 독차지할 만큼 총명했다고 한다. 조선 왕조의 역대 왕 중 원손, 세손, 세자를 거쳐 즉위한 가장 완벽한 조선 정통 핏줄의 유일한 왕이었다.

1452년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단종은 1455년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16살에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후 17살에 영월 관풍헌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후 1698년(숙종 24년)에 임금으로 복위됐다. 현재 영월에는 청령포·장릉·관풍헌 등 단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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