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드 3불, 약속 아닌 입장"…文정부 방패가 尹정부 창 됐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뉴스 ONESHOT’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사드 3불

(사드)3불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약속도, 합의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의 입장을 설명한 것이고, 이걸 철회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2일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사드 3불(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 후보자의 말처럼 3불은 구속력 있는 약속이나 합의가 아니라는 논리는 문재인 정부가 주장해온 그대로다. 사드와 관련, 굴욕적 합의라는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고안해낸 문재인 정부의 ‘방패’가 윤석열 정부의 ‘창’이 되는 이유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짚어보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사드 갈등 봉합과 한‧중 관계 정상화를 서둘렀다. 그 결과 나온 게 2017년 10월 31일 발표한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였다. 이게 공개된 유일한 결과물이다.

경북 성주 기지의 사드 포대. 뉴시스

경북 성주 기지의 사드 포대. 뉴시스

언론에서는 편의상 이를 ‘사드 합의’라 불렀지만, 사실 당시 발표에서 양 측이 합의를 이룬 건 많지 않다. 주어가 ‘양 측은’인 문장은 “양국 군사 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 측이 우려하는 사드 관련 문제에 대해 소통해 나간다”,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한다” 등 정도다.

사드 3불은 전날인 2017년 10월 30일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의 국정감사 답변에서 먼저 나왔다. 외교통일위원인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 한‧중 관계 정상화를 언급하더니 갑자기 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발전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물었다. 강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 정부는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드 배치는 미 MD 체계 편입과는 무관하며, 우리 정부는 미국의 MD 체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 또 한‧미‧일 3국 간 안보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사드 3불은 이렇게 ‘갑툭튀’로 처음 정형화됐다. 그리고 이는 다음날 발표에 “중국 측은 MD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 등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입장과 우려를 천명했다. 한국 측은 그간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혀온 관련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는 문안으로 포함됐다.

2017년 10월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사드 3불 입장을 밝혔다. 박종근 기자

2017년 10월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사드 3불 입장을 밝혔다. 박종근 기자

사실 중국이 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우리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내용을 공식 발표에 포함한 것도, 이를 국회에서 여당 의원이 묻고 외교부 장관이 답하는 ‘짜고 치는’ 방식으로 공식화해 기록으로 남긴 것도 적절치 않았다. 이런 의견 교환은 내부적인 협의 기록으로만 남겨두면 될 일이지, 사방팔방에 알릴 성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10‧31 발표 문안이나 강경화 장관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가 일관되게 쓴 표현은 ‘입장’이었다. 약속이나 합의는 물론이고, 원칙도 아니었다.

물론 이후 중국이 3불을 약속처럼 취급하거나 억지를 쓰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미 배치된 사드 포대가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등 문 정부 임기 5년 뒤 결과만 놓고 보면 사드는 해당 기간 동안 무력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괴리에도 불구하고 문 정부는 한결같이 사드 3불은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 약속을 한 것이라면 안보 주권 사안에 대해 중국의 허락을 맡겠다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베이징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2017년 12월 베이징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이제 윤석열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를 포함, 사드와 관련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주요한 근거가 됐다. 입장이란 건 정부의 판단 영역이고,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 합의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약속을 어겼다며 문제 삼을 명분도 없다.

박진 후보자가 사드 3불에 대해 “철회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입장은 필요하면 알아서 바꾸거나 유지하면 그만이지, 굳이 3불이 이제 없네 마네 중국을 상대로 또 확인해줄 필요도 없다.

특히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산둥성에 장거리 조기경보 레이더를 설치했다. 한국과 일본의 미사일 동향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국도 우리에게 허락을 받고 한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레이더를 설치한 게 아니지 않은가.

이처럼 문 정부의 의도치 않은 ‘어시스트’로 3불 고비를 넘은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사드와 관련해 주의해야 할 것은 일관성이다.

애초에 안보 사안인 사드 문제가 외교 사안으로 번져 한‧중 간 최악의 갈등으로 이어진 데는 한국이 초기 입장 설정에 미숙했던 탓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가 공론화하기 시작하자 입장을 ‘3NO’, 즉 No Request(요청), No Consultation(협의), No Decision(결정)으로 설명해 중국에 여지를 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8차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철수 인수위원장에게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전달 받은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8차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철수 인수위원장에게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전달 받은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했다. 하지만 2일 박진 후보자는 “신정부에서 심도깊게 검토할 사안”이라며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3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이를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약과 달라졌다고 무조건 비판할 사안은 아니다. 후보 신분과 대통령 신분으로서의 판단은 다를 수 있고, 달라져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안보 사안은 특히 그렇다. 문 대통령도 공약대로라면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공식 파기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윤 정부도 출범 뒤 사드 추가 배치와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 한 가지 원칙만 유지하면 된다. 사드는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주권적 결정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우리 필요에 맞게 모든 선택지를 열어놓고 결정하면 될 일이다. 사드 추가 배치가 현실화할지를 떠나 여기서 흔들림이 없어야 불필요한 기대나 여지를 처음부터 제거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