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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수완박’도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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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사회2팀장

김승현 사회2팀장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사이, ‘곰수완박’도 있었다. 사육장을 탈출한 사육곰 ‘빠삐용’의 죽음(지난 4월 14일 사살)을 그렇게 불러야 할 것 같다. 한국 사육곰의 수명은 완전히 박탈됐다.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 꼬집어 말하기도 어렵다. 우리의 시스템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곰들을 죽이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육곰이라는 표현에 살생이 예정돼 있었다. 사육의 이유가 뭐였겠나. 인간, 더 좁게는 환자를 위해 곰의 쓸개, 웅담을 캐내야 했다.

지난 4월 강원도의 한 사육장에 갇혀 있는 곰의 모습. 김성룡 기자

지난 4월 강원도의 한 사육장에 갇혀 있는 곰의 모습. 김성룡 기자

1980년대엔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한 일이었다. 곰을 수입해 사육장에 가두고 도축해서 웅담을 팔거나, 산 채로 웅담즙을 채취하는 일은 그 명분 앞에 합법이었고, 쏠쏠했다. 1980년대에도 꿀을 훔쳐 먹다 사살된 곰 이야기, 그 곰이 수천만 원에 팔린 소식이 뉴스였다. 국민을 향해서도 총을 난사하던 시대인데, 곰이 대수인가. 그런데, 그런 시절에도 4년여 만에 여론이 돌아섰다. 불쌍한 곰을 수입하는 게 금지됐다. 하지만, 농가 소득 증대라는 명분, 웅담이라는 실리, 그리고 농장주의 권리는 남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으로부터 4년 뒤인 2026년엔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웅담 채취용 사육·도축이 여전히 합법으로 방치되고 있다.

긴 세월 속에 탈주한 곰과 그의 사살 소식이 캘린더형 뉴스로 자리 잡았다. 사육장에서 곰이 태어나 자라듯, 그 시스템 안에서 엽사들도 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엔 민간인의 안전을 위해, 다시 한번 곰수완박. 엽사들의 눈에 고인 눈물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런 곰에게 빠삐용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들이 있었다. 작명자인 동물자유연대는 “사람의 손에 죽은 곰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비통한 심정”이라며 애도 성명을 냈다. 그런 곰들을 지켜보다 대안도 마련했다. 농장주들이 소유권을 포기하면 사육곰을 해외의 야생으로 보내는 프로젝트다. 지난 3월 강원도 일대의 사육곰 22마리가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인근의 ‘야생동물 생츄어리(TWAS·The Wild Animal Sanctuary)’로 이주했다. 나비처럼 자유롭게 야생에 적응하는 반달가슴곰의 모습이 SNS에 있다.

곰수완박, 그것은 우리의 시스템이었다. 사람보다 시스템에 충성하는 시대이기에, 그 시스템이 새삼 무섭다는 걸 느낀다. 사람이 건성으로 만든 시스템에 곰이 죽어갔다. 속절없이 흐른 40여 년은 누구의 책임인가. 곰수완박이든 검수완박이든, ‘아차’하는 순간 후손들을 살생의 길에 접어들게 할 수도 있다. 그걸 감당할 준비를 ‘책임있게’ 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