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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와 그린워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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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사회정책팀 기자

정종훈 사회정책팀 기자

2018년 한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가 앞장서 플라스틱 대신 종이로 된 빨대를 도입했다. 편리함보다 지속 가능성을 택한 실험은 오는 11월 적용될 카페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보다 4년이나 앞섰다. 다른 업체도 속속 따라가고 있다. 세계적 화두인 ESG(환경·사회 책임·지배구조) 경영에 발 빠르게 나선 것이다.

지난해 같은 업체가 진행한 리유저블컵(다회용컵) 증정 행사는 반대로 씁쓸함을 남겼다. 재사용 장려란 취지와 달리 한정판에 방점을 찍은 고객들이 몰려 ‘예쁜 쓰레기’를 양산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환경단체는 컵의 플라스틱 재질 등을 두고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고 꼬집었다.

환경을 고려한 ESG 경영에 나선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 포장에 그치면 그린워싱이 되기 쉽다. [사진 셔터스톡]

환경을 고려한 ESG 경영에 나선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 포장에 그치면 그린워싱이 되기 쉽다. [사진 셔터스톡]

기후위기의 시대, 종이 빨대와 리유저블컵은 친환경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기업들은 너나없이 ESG 경영을 내세우고, 친환경 성과를 홍보한다. TV서 나오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광고 카피가 신선했던 시절이 20여년 전이라는 게 낯설 정도다. 반면 ‘내가 더 친환경적’이란 과열 경쟁 한켠에선 그린워싱 우려도 함께 커진다.

ESG와 그린워싱은 한끗 차이일 수 있다. 리유저블컵이 거센 공격을 받았지만, 이 기업만큼 일회용 컵 퇴출에 열성인 곳은 찾기 어렵다. 반면 ‘환경을 생각했다’는 포장만 번드르르할 뿐, 알맹이는 되레 환경을 위협하는 제품도 널렸다. 탄탄한 친환경 기업이 그린워싱의 경계선에서 출발한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비슷한 구호가 범람하면 시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린워싱에 실망하면 ESG 우수 기업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진짜 친환경과 초록 덧칠만 한 친환경을 구분하고 규제해야 하는 이유다.

친환경 논란은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새 정부가 5년간 추진할 국정 목표·과제를 곧 발표한다는데, 탈(脫) 탈원전 외에 이렇다 할 환경 관련 이슈는 나오지 않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현장 방문에서도 환경은 찾기 어렵다. 대통령직인수위는 신재생에너지·원전의 동반 확대를 강조하지만, 환경단체에선 석탄발전 등을 두고 ‘그린워싱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정부 출범 후엔 ‘그린워싱이라도 해달라’는 호소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5년 ‘주식회사 문재인’ 대표는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같은 탄소중립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말 많고 탈 많던 친환경 경영은 최종 평가만 앞두고 있다. ESG나 그린워싱, 둘 중 하나로 매겨질 듯싶다. 이제 ‘주식회사 윤석열’의 녹색 경영이 5000만 소비자에 선을 보인다. 2027년 받아들 실적표 향방은 안갯속이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온전히 새로운 대표의 몫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