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日 10년 대불황 전철 밟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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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장기 불황의 늪에 빠졌던 일본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14일 블룸버그통신의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는 "1997년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일본의 선생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일본의 과오를 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 경제 5년 전(前)과 후(後)

5년전만해도 일본은 한국에게 한 수 배워야 할 나라였다.

당시 일본은 10년 대불황에 갇혀 여전히 허덕이고 있었고 한국은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1999년말 원화 가치는 37%올랐고 1998년 6.9%에 그쳤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8.5%로 올라섰다.

이후 2001년 경제성장률이 3.8%로 밀려났지만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인 미국에 찾아든 경기 한파로 이웃나라 일본, 대만 등이 경기침체에 빠졌던 것에 비하면 선전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고 일본도 10년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원화강세, 고유가, 부동산 거품 우려까지 겹치면서 1990년대 일본을 옥죄었던 위기가 한국에 드리워지고 있다고 페섹은 지적했다.

◇한국경제, 부동산발 위기

한국이 일본 경제 불황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현 정부들어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은 이같은 지적을 간과할 수 없게 만든다.

10월동안만 한국의 아파트 가격은 전월대비 1.5% 올랐다. 2003년 10월 이래 최고 상승폭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전날 "한국 주택시장이 자산 '버블' 상태에 직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주 "최근 집값 가격이 우려스럽다"며 엇갈린 입장을 드러냈다.

페섹은 "부동산 가격의 갑작스런 붕괴는 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우려를 전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이 경제 연착륙을 위해 경기 조절에 나서고 있고 미국도 경기 둔화와 함께 수요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부동산발 위기에 대한 우려가 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경제학자들조차도 한국이 직면한 위협이 크다는데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홍콩의 앤디 시에 이코노미스트는 "구조적으로 한국은 지난 5년간 일본의 신드롬에서 빠져나오고 있었지만 지금도 얇은 얼음위에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이 발전하고 있고 한국은 중국에 대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며 "중국의 가전 및 자동차 산업은 질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신불수에 빠진 '정책'

페섹이 지적한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 리스크는 '정책마비'다.

2003년 2월 취임 이래 노무현 정부는 경제성과에 대해 부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낮은 지지율과 내분에 직면, 기업 및 소비자 신뢰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무현 정부의 노력이 더욱 어려워보인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이제 갓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온 걸음마 단계다. 심각한 인구 노령화에도 직면해있다. 막대한 채무, 저금리도 일본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있다.

페섹은 "한국이 직면한 도전은 (일본 보다)훨씬 더 클 수 있다"며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살아남으려면 훨씬 더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4%로 둔화된다하더라도 선진7개국(G7)에 비해서는 견조한 것"이라며 "한국은 현 수준의 경제성장의 이익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1990년대 일본의 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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