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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한국 실질 가계부채 2713조원, GDP 대비 13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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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계 1위 가계부채 방치할 건가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새 정부 5년 동안 우리가 맞이할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30년간 지속한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라 경제의 성장능력을 나타내는 장기성장률이 마침내 0%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연간으로 측정하는 경제성장률은 장기성장률에 단기적 충격이 더해져 결정된다. 이미 체력이 바닥난 장기성장률 때문에 향후 조금만 충격이 가해져도 연간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역성장 위기에 쉽게 빠질 상황이 됐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코로나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미국 금리 인상 등 만만치 않은 대내외 충격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새 정부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장기성장률을 반등시키기 위한 획기적인 성장정책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와 아울러 단기적 충격이 대규모 위기로 발전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위기예방 정책이 요구된다. 특히 대내외적 충격이 가해졌을 때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미리 도려내야 한다. 그 중 특히 주의 깊은 선제적 점검과 관리가 필요한 것이 가계부채다.

한국, 주요국과 달리 가계빚 급증
전세 포함하면 실질부채 더 늘어
가계신용 1862조, 전세보증 851조
새 정부, 금융위기 뇌관 제거해야

가계부채 뒤에 금융위기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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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되어 실물 부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전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증가하며 2000년 초 69.7%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2008년 초에는 거의 100%까지 증가했다. 가계부채의 급증 이후 미국은 2008년 9월 리먼 사태에 이은 대규모 금융위기를 맞이했고 그 결과 2009년 마이너스 2.8%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따라서 위기예방을 위해 가계부채 총량을 정확히 계산하고 과도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정부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이에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컸던 미국·아일랜드·스페인 등 여러 나라는 위기 이후에 가계부채 비율을 크게 줄여왔다. 그러나 한국은 위기 이후에도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해 2020년 GDP 대비 가계부채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세계 6위가 돼 2008년 12위에서 여섯 계단이나 상승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한국은 가계부채 총량이 크게 과소평가됐을 수 있다는 점이다. BIS는 각국의 가계부채 총량을 금융기관이 가계에 공급한 대출 총량을 집계해 계산하는데 이 방법이 다른 나라들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이 나라들에서는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 즉 중계기관을 통한 간접금융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전세금은 집주인이 짊어진 부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기관을 통한 가계부채에 더해 한국 고유의 전세와 준전세를 통한 가계부채가 대규모로 존재한다. 필자가 신현송 박사(BIS 조사국장)와 2011년 쓴 논문에 따르면, 전세의 본질은 집주인이 주택을 빌려주고 세입자로부터 돈(전세보증금)을 빌리는 가계 간 금융이다.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2021년 4월 13일자 참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러한 전세 금융에서 세입자가 임대한 집은 빌려준 전세금에 대한 담보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세입자가 빌려준 전세금에 대한 받을 이자와 집주인이 받을 월 임대료가 자동으로 상쇄됨으로써 이자를 받지 못할 위험과 월세를 받지 못할 위험도 완벽하게 제거된다. 그 결과 전세는 금융기관을 통한 간접금융보다 원금과 이자 못 받을 위험을 크게 낮춰주는 매우 효율적인 직접금융이다. 전세금의 30~40%를 보증금으로 지불하는 준전세 보증금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가계 간 직접금융이다. 결국 전세 및 준전세 보증금은 집주인이라는 가계(household)들의 부채다.

이러한 한국 전세제도의 특수성으로 볼 때, BIS의 가계부채 통계나 한국은행의 가계신용처럼 금융기관으로부터의 가계대출만을 집계한 가계부채 통계만으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총량을 파악하기 힘들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세보증금과 준전세 보증금이라는 가계부채를 금융기관을 통한 가계부채에 더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가계부채 연착륙 로드맵 만들어야

이런 까닭에 필자는 김세직·고제헌(2018) 논문에서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량을 금융권으로부터의 간접부채인 가계신용에 직접부채인 전세 보증금과 준전세 보증금을 더해 추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추정해 본 결과 한국의 가계부채는 2010년대 중반에 GDP 대비 120%를 넘는 수준으로 스위스·호주와 함께 이미 세계 최상위 수준이었다. 이는 롬바르디 등의 연구에서 제시하고 있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가계부채 수준의 임계치 80%도 훨씬 초과하고 있었다. 연구 결과는 결국 2010년대 중반에 이미 한국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2010년대 중반 이후 2021년 상반기까지 가계부채는 다른 정책 목표들에 밀린 채 더욱 높은 수준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0년대 중반의 건설 경기 부양 정책, 2020년 코로나에 대응한 저금리 정책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집값과 전셋값이 급등했고, 전세·준전세 보증금 부채와 금융권의 가계대출이 동시에 급증하며 부동산 가격 급등을 뒷받침했다.

그 결과 필자의 후속연구에 따르면 2020년에 우리나라 전세·준전세 보증금 부채는 851조원에 이르렀다. 이에 2021년 이 값이 변하지 않았다는 보수적인 가정 하에 가계신용 1862조원을 더하면 2021년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량은 2713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GDP 대비 130%를 넘는 수준으로 세계 1위를 의미한다.

세계 1위 수준의 가계부채 총량 수치는 향후 커다란 대내외 충격이 가계부채 채널을 통해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정책 대응의 시급성을 알리고 있다. 다행히 2021년 하반기부터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위험 관리를 정책목표로 놓고 가계대출 총량 규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의 강력한 관리정책을 실시해 빠르게 증가하던 가계부채에 브레이크를 일단 성공적으로 걸어 놓았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을 새 정부와 한국은행의 경제팀도 이미 GDP 대비 130% 수준까지 누적된 가계부채를 어떻게 연착륙시킬지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만들고 이의 조속한 실행을 통해 만에 하나 가계부채가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예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계부채 과도하면 성장률 감소시켜

가계부채란 개별 가계들이 다른 경제 주체들로부터 빌린 총부채(gross debt)를 모든 가계에 대해 더한 거시변수다. 부채에서 자산을 뺀 순부채(net debt)를 더한 것이 아니다. 100명이 사는 나라의 국민이 1원씩 은행에 예금하고(빌려주고) 1원씩 은행 대출을 받았다면 이 나라의 가계대출은 순부채의 합인 0원이 아니라 100원인 것이다.

만약 가계부채도 개별 가계들의 자산(빌려준 돈)과 부채(빌린 돈) 구성이 가계 간 동일하면 GDP 등 주요 거시경제 변수에 별 영향을 못 미친다. 그러나 가계 간 자산과 부채의 구성이 크게 차이가 나면(극단적 예로 국민 중 반은 빌려만 주고, 반은 빌리기만 하는 경우에는) 가계부채 총량의 증가가 GDP나 경제성장률 등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각국 사례와 함께 최근 연구에서 계속 증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안 등(2017)의 연구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증가가 단기적으로는 GDP 증가를 가져오지만 3~4년 지나면서부터는 오히려 GDP 성장의 감소를 가져온다고 증명했다. 롬바르디 등(2017)의 연구도 가계부채의 1%포인트 증가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0.1%포인트 하락시키고, 특히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성장률 하락 효과가 더 커지는 결과를 보였다.

이는 가계부채 총량 수치만으로도 정책당국이 거시경제에의 부정적 효과를 일차적으로 검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가계부채가 과연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동할지를 더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의 총량과 함께 어떤 종류의 가계부채가 어떤 가계들에 집중되어 있는지 그 구성에 대한 보완적 연구도 긴요하다.

현재 통계청이 모든 개별 가구들에 대해 세분된 금융부채와 주택·인구·소득 정보 등을 모아 연결한 통계 DB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한 가계부채 위험성 평가와 위기예방 정책까지 조속히 실현되길 바란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