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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적자' 현실화 되나…고물가에 또 2개월 연속 무역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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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달 무역수지가 또 적자를 기록했다. 높아진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원화 값마저 빠르게 내려가고 있어서다. 무역적자가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재정과 경상수지가 모두 적자를 보는 ‘쌍둥이 적자’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수출액 최고에도 대규모 무역적자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아래)와 감만부두(위)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아래)와 감만부두(위)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수출액이 576억9000만 달러(약 72조8600억원)로 지난해 4월과 비교해 12.6% 늘었다고 밝혔다. 4월 기준 역대 최고 수출액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수입액은 603억5000만 달러로 18.6% 증가하며 수출액을 뛰어넘었다. 이 때문에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도 26억6000만 달러 적자를 봤다. 3월(-1억4000만 달러)과 비교해 적자 폭이 오히려 더 커지면서 두 달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무역수지가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12월~올 1월을 제외하고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줄곧 흑자였던 무역수지는 지난해 12월 처음 20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서는 2월을 제외하고 모든 달의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많았다.

에너지·농산물·원자재 고공행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마지막 항전지인 아조우스탈 앞에서 체첸 특수부대를 포함한 친러시아 군인들이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마지막 항전지인 아조우스탈 앞에서 체첸 특수부대를 포함한 친러시아 군인들이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들어 무역수지가 계속 적자를 내는 것은 높아진 물가 때문이다. 지정학적 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금융 긴축 정책으로 달러당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입 물가 부담을 배가시켰다.

실제 지난달 3대 에너지(원유·가스·석탄) 수입액은 148억1000만 달러로 지난해 4월 수입액 77억2000만 달러와 비교해 91.8%(70억9000만 달러) 급증했다.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겨울철인 올 2월 수입액(124억8000만 달러)보다도 많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길어지면서, 국제유가가 봄철에도 고공행진을 이어간 탓이다.

최근 주요품목 월별 수입액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최근 주요품목 월별 수입액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세계 곡창 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치르면서, 밀·옥수수 가격도 급등했다. 지난달 농산물 수입액(24억 달러)은 월간 기준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상승세로 인한 전력난에 알루미늄괴(26.1%)·구리광(53.5%) 같은 비철 금속 수입액도 전년보다 많이 증가했다. 중간재 품목인 반도체(21.8%)·철강제품(10.3%) 수입액도 1년 전보다 늘었다.

이런 물가 상승세는 교역 조건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3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서 3월 한국의 순상품교역조건지수(87.3)가 전년 동월 대비 6.3% 내렸다고 밝혔다. 수입가격 상승(22.2%)이 수출가격 오름세(14.5%)보다 컸기 때문이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100 이하라는 것은 수출품이 수입품보다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물량 줄었는데 단가만 오른 수출

한국 경제를 그나마 뒷받침하고 있는 높은 수출 성장세도 언제든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수출액은 4월 기준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물량은 지난해 4월보다 5.6% 오히려 감소했다. 판매량 감소에도 판매 단가가 올라 수출액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 전년 대비 4월 품목별 수출액 증가율을 보면 철강(21.1%)·석유제품(68.8%)같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출액이 늘어난 품목들이 선전했다.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의 성장 둔화도 우려되는 점이다. 지난달 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하면서 4대 수출 시장(중국·미국·유럽연합·아세안) 중에서 유일하게 줄었다. 코로나19 확산에 중국 정부가 상하이를 봉쇄하면서 주요 공장의 생산량이 감소한 탓이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 공급망 불안 등의 여파로 세계 경제 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있는바,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는 환경”이라고 했다.

무역적자 장기화에 ‘쌍둥이 적자’ 우려 

무역수지 악화 상황이 길어지면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쌍둥이 적자(재정수지와 경상수지 모두 적자)’를 볼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특히 경상수지는 무역적자 폭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실제 월간 기준 역대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던 올해 1월, 경상수지 흑자 폭(18억1000만 달러)도 전년 대비 49억7000만 달러 줄었다.

재정수지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최근 코로나19 지원 대책 등이 겹치면서,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1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정부가 예측한 올해 전체 통합재정수지(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는 70조8000억원 적자로 적자 폭이 역대 두 번째로 많다. 올해 2월까지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 주는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기금 수지 제외)도 20조원 적자로 집계됐다.

특히 재정적자 확대는 경상수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재정적자로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이자율이 올라가 기업 자금 조달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소비 및 투자 위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최근 보고서에서 “다른 조건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재정수지가 악화하면 경상수지도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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