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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정치만 속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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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31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영국에서는 요즘 식용유 대란이 벌어졌다. 팬데믹 초기에는 휴지 및 계란과 같은 생필품 대란이, 지난해 가을에는 차량용 연료 대란이 벌어졌었다. 브렉시트 이후 물자와 인력의 이동이 전처럼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대형 수퍼마켓에 가기만 하면 되는 평안한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고는 해도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공급 불안정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달라서 놀랍고 불안했다.

이번엔 올리브유, 해바라기씨유, 카놀라유 등 식용유로 주로 사용하는 기름들이 동났는데, 가격이 30% 가까이 올랐고 1인당 살 수 있는 수량에 제한이 생겼을 정도다. 다만 이번의 식용유 대란은 코로나가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문이다. 전쟁과 식용유가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씨유와 카놀라유의 주요 생산국이다. 영국은 주로 우크라이나에서 수입을 하고 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끝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생각해 볼 때 언제부터 정상적으로 생산을 재개하고 수출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이 두 기름의 수급이 언제 안정될지는 알 수가 없어졌다.

영국선 최근 식용유·식료품 대란
한국도 치솟는 물가 사정 비슷할 듯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검수완박 등
정치 이슈만 속도전 펼치는 까닭은

해바라기씨유와 카놀라유를 대체할 기름으로 올리브유나 팜유 등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팜유의 경우 이미 가격이 오른 상태다. 최대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던 주변국 노동자들의 입국이 코로나로 인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슬슬 그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코로나 상황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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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유는 비누, 화장품, 치약, 세제뿐 아니라 바이오디젤의 원료다. 해바라기씨유와 카놀라유 역시 마요네즈나 영국인들이 즐겨 먹는 감자 칩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원료이기도 하다. 원료 가격이 상승한 데다가 물류비용도 올랐으니 관련 제품들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식용유가 유난할 뿐 다른 식료품 가격 또한 오른 것은 마찬가지다. 건강 유지를 위해 필요한 식품을 구매하거나 섭취할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한 영국인이 470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 식료품 구입을 줄였다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가뜩이나 연료비가 오른 상태다. 사정이 이러하니 영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인건비 역시 올랐다지만 월급 상승률은 이처럼 여러 요건이 종합되어 치솟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신문에는 보다 싼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법에 대한 정보가 실릴 정도다. 연어 대신 정어리 캔을 활용하라는 식이다.

이쯤 되면 총체적 난국이라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영국 재무부 장관은 가구당 연료비를 지원하고 주민세를 할인하겠다며 총 90억 파운드(약 14조억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정부 지원으로는 영국 국민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은 코로나로 인한 전면 봉쇄 기간 법을 어기고 파티를 벌였다는 이유로 총리를 맹렬히 공격하는 와중에도 여당에 기본 식료품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 예산을 편성할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지방선거 유세를 다녀 보니 영국 전체로 보아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는 생활비 인상이더라는 것이다.

영국의 이야기를 적었지만 한국 역시 상황이 그리 다르게 전개될 듯하지는 않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전 세계를 덮쳤는데 한국만 비껴갈 수 있을 리가. 더구나 한국은 에너지와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가 아닌가. 전쟁으로 생산과 수출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식용유만이 아니다. 원유나 원자재, 농축수산물 역시 가격이 올랐다. 한국인들 역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주유비나 외식비는 이미 부쩍 올랐다고 하고, 선거가 끝났으니 공공요금 역시 오르지 않을까. 월급만 빼고 다 오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서울의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물가가 급등하고 있으니 임금 인상 요구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물가 인상에 대해 과연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지 좀 의문이다. 개개인, 나아가 그 개인들이 모여 만드는 집단의 관심이나 능력이 무한정한 것이 아니지 않나. 주로 관심을 쏟는 주제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를 처리하는 데 자원을 쓰고 나면 다른 사안들에 돌아갈 여력은 적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심지어 일반 시민들조차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정치’인 것 같다. 다른 사안들은 크든 중요하든 정치적인 논의보다 후순위로 밀려있는데 문제는 그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라는 데 있다.

신임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나 소위 검수완박과 같은 논의가 대표적이다. 거의 모든 관심과 역량이 쏠려 있는 듯하다. 그런데 두 가지 사안 모두 왜 저다지도 의견을 모으지도 않고 시간을 두고 준비하지도 않고 무리하게 속도전을 펼치는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왜 지금 저런 문제들이 최우선 순위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치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급박한 문제인 건 알겠다.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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