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소' 잊었다…고기에 미친 한국인, 밥보다 더 먹는다

중앙일보

입력 2022.04.30 00:10

업데이트 2022.04.30 02:20

육류가 주식(主食) 시대

“구뎅이(갱도)에서 나오면 찾는 게 서너 가지 되지. 가족이 먼저고, 그다음이 소주. 그리고 돼지고기야. 한껏 달궈진 넓적 돌에 고기를 올렸을 때 소리는 정말….”

촤아악! 광부 노동자로 20여 년간 일한 김모(72)씨는 지난 7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의 한 고깃집에서 소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미국산 소 갈빗살이었다.

우리나라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중구의 '식껍'에서 손님이 돼지고기를 굽고 있다. 정준희 기자

우리나라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중구의 '식껍'에서 손님이 돼지고기를 굽고 있다. 정준희 기자

“우설입니다. 와사비를 살짝 올려놓고 드세요.”

지난 25일. 서울 강남의 한 한우 오마카세 식당에서 셰프가 김예림(25)씨에게 권했다. 오마카세는 셰프가 직접 메뉴를 선정해 내놓는 형태의 식당을 일컫는다. 김씨는 “1인당 2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비싸지만, 친구들과 돈을 모아 왔다”며 “오로지 고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고기 120개 부위로 나눠 먹는 민족”

충남 홍성군 서부농협에서 판매하는 홍성한우. 한국인은 한우를 가장 선호하는 고기로 꼽는다. 박종근 기자

충남 홍성군 서부농협에서 판매하는 홍성한우. 한국인은 한우를 가장 선호하는 고기로 꼽는다. 박종근 기자

‘고기 사랑’이라고 했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고기를 사랑하는 게 맞다”라면서 “심지어 집착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에도 한국인의 고기 사랑은 활활 타오른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2020년 한국인 1명이 1년간 섭취한 육류(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는 53.7㎏. 같은 해 1인당 쌀 소비량 57.7㎏에 근접했다. 빵·면 등 대체 식품이 다양한 쌀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를 반영하면 조만간 이 수치가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전국한우협회 한우정책연구소는 올해를 그 기점으로 봤다. 2000년 이후 매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12㎏씩 늘어났다. 반면 쌀은 1.8㎏씩 감소하고 있다. 2022년에 한국인은 56㎏ 가까운 고기를, 55㎏ 정도의 쌀을 먹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고기를 풍족하게 먹게 된 배경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소고기 수입량은 45만2812t으로 전년 대비 7.9%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산 쇠고기(부산물 제외) 수입은 세계 1위가 됐다. 27만3638t을 들여와 일본(25만8404t)을 처음으로 제쳤다. 수입 소고기 절반은 미국산이라는 얘기다. 한·미 FTA 체결 9년 만이다. ‘뇌 송송 구멍 탁’ ‘미친 소 너나 먹어’ 등의 구호가 난무하며 한국을 둘로 쪼갰던 2008년의 광우병 파동은 기억 저편의 일이 됐다. 돼지고기도 EU·칠레와 FTA를 체결하면서 수입산 냉장육 점유율이 1년 새 6.1%에서 7.7%로 치솟았다. 수입 돼지고기 중 절반은 삼겹살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국인의 고기에 대한 애착은 뿌리 깊다. 정 교수는 “한국인은 ‘이밥에 고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기를 예전부터 사랑했는데, 생선을 ‘물고기’라고 부르는 점만 들어도 그 애정이 지극하다”며 “고구려를 세운 맥족이 즐긴 맥적은 당시 중국도 극찬한 메뉴”라고 밝혔다.

조선 시대, 우금령(牛禁令)에도 소 잡기가 이뤄졌으니 선조 6년(1573)에 사헌부에서 “소를 잡는 것은 금령이 있으나 사대부가 서로 마주해 먹으면서 서로 부끄러움이 없습니다”라고 고할 정도였다. 『목민심서』는 19세기 조선에서 하루에 잡는 소를 1000마리로 계산하기도 했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는 “지방·수분·조직이 고기 맛의 성패를 좌우하는데, 그 최적화된 고기가 바로 한우”라고 밝혔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가 고시하는 소고기 부위는 39개. 하지만 박 칼럼니스트는 “한국인은 원래 소고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세밀하게 나눠 먹는 민족으로 그 부위가 120개나 된다”고 밝혔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최근 소고기 정형은 미세해지는 추세다. 세분된 부위를 소비하는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한우 오마카세다. 새우살(갈비덧살)·설도·우둔살 등이 인기 부위다. 정 교수는 “한우 오마카세는 일본의 ‘스시 오마카세’에서 이름만 빌려왔을 뿐 한국의 식문화”라며 “멀리 난로회에서 직접 구워 먹는 문화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창한우. 지방 분포도를 나타내는 '마블링'은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소고기의 질을 좌우하는 척도로 여긴다. [중앙포토]

고창한우. 지방 분포도를 나타내는 '마블링'은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소고기의 질을 좌우하는 척도로 여긴다. [중앙포토]

소고기, 즉 한우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 1위다. 하지만 비싸다. 한우 오마카세만 해도 1인분에 20만원 안팎이다. 미국산 소고기는 가격 경쟁력으로 한국 식탁을 점령해 왔다. 실제 한국농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4월 1일 현재 한우는 미국산 갈빗살보다 최소 1.5배(설도 1등급)에서 최대 6배(안심 1+등급) 비싸다. 미국산 소고기는 2026년, 호주산 소고기는 2028년부터 무관세로 들어오게 된다. 정 교수는 “미국산 소고기는 한우와 부위는 다르더라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며 “한우가 고급화 전략으로 시장을 형성하면서, 미국산 수입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8일부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자 가장 먼저 손님이 찬 곳은 고깃집이다. 서울 중구의 한 고깃집 사장은 “18일이 지나자 손님이 4배 정도는 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5월은 나들이가 잦아지고 ‘가정의 달’로 모임이 많아지는 시기. 통상 고기는 이때부터 소비량이 증가한다. 해외여행이 막히자 캠핑을 비롯한 국내 여행이 늘어난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해 5월 축산 매출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5월보다 26.8% 증가했다. 이 기간 국내산 냉장 삼겹살의 경우 100g당 1910원에서 2451원으로 가격이 28% 오른 ‘악재’를 뒤엎은 결과다. 100%에 가깝던 돼지고기 자급률(2019년 기준)은 FTA 체결이 잇따르면서 73%(2019년 기준)로 떨어졌다. 소고기 자급률은 32%, 닭고기는 89% 선이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레스토랑 '모퉁이우라이프'에서 선보이는 한우 오마카세 요리. 구운 고기와 여러 종류 채소를 곁들였다. 이곳에선 각각의 코스마다 다른 접시를 사용한다. 한국 도예작가들에게 특별 주문·제작해 만든 접시들로 미식 단계 중 하나인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함이다. 장진영 기자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레스토랑 '모퉁이우라이프'에서 선보이는 한우 오마카세 요리. 구운 고기와 여러 종류 채소를 곁들였다. 이곳에선 각각의 코스마다 다른 접시를 사용한다. 한국 도예작가들에게 특별 주문·제작해 만든 접시들로 미식 단계 중 하나인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함이다. 장진영 기자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고기 1위는 돼지고기다. 2020년 1인당 육류 소비량을 보면 소고기 13㎏, 돼지고기 26㎏, 닭고기 14.7㎏이다. 돼지고기가 소고기의 두 배다. 그 중심에 삼겹살이 있다. 한국은 삼겹살 공화국으로 부른다. 1979년 가격 폭등으로 정부에서 돼지고기 대일 수출을 막자 한국에는 비로소 삼겹살의 시대가 도래했다. 소설과 영화에 삼겹살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회식하면 으레 삼겹살이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인 브루스타가 보급(1980년, 한국후지카공업)되면서 삼겹살 공화국은 날개를 달았다. 주말마다 온 나라 계곡과 들에서 피어나는 삼겹살 연기는 전쟁터의 포연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삼겹살 회식은 조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비교적 싼 값에 한국인의 고기에 대한 욕망을 충족했으며, 회식이 이뤄지는 삼겹살집은 격동기 사회 구성원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돼지고기 삼겹살이 본격적으로 냉장 유통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하지만 아직도 냉동 삼겹살을 찾는 이들이 많다.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내놓는 삽겹살은 모두 냉동이다. 김홍준 기자

돼지고기 삼겹살이 본격적으로 냉장 유통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하지만 아직도 냉동 삼겹살을 찾는 이들이 많다.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내놓는 삽겹살은 모두 냉동이다. 김홍준 기자

서울 중구의 '식껍'에서 손님이 돼지 껍데기 등을 굽고 있다. 이 음식점 관계자는 2030 세대가 특수부위를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정준희 기자

서울 중구의 '식껍'에서 손님이 돼지 껍데기 등을 굽고 있다. 이 음식점 관계자는 2030 세대가 특수부위를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정준희 기자

90년대 중반에야 삼겹살이 국어사전에 등재됐으니, 100여 년 전부터 세겹살(조선요리제법, 1931)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된 삼겹살의 공식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은 셈이다. 최근에는 냉동 삼겹살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 아예 초창기 그대로 냉동 삼겹살을 고집하는 식당도 있다. 90년대 후반 유행했던 대패삼겹살도 2030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냉동 삼겹살과 대패삼겹살은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닭고기는 한국인의 배달 육류 1위이자 창업 1순위 육류다. 2019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배달음식 선호 1위 메뉴는 치킨이다. 전문가들은 창업 1순위 치킨집의 급증과 한국 배달 문화의 급성장을 그 배경으로 꼽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치킨집 창업 급증 시기는 실업자 급증 시기와 맞물린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치킨은 배달 음식 육류 1위이자 창업 1순위 고기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고 있다. 정준희 기자

치킨은 배달 음식 육류 1위이자 창업 1순위 고기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고 있다. 정준희 기자

60년대엔 수요 감당 못해 ‘무육일’ 지정도

한국인의 고기 사랑은 ‘무육일(無肉日)’이라는 황당한 규제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전쟁 직후 고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이승만 정부는 매주 수요일을 고기를 못 먹게 하는 날로 정했다. 1960년대 들어서도 서울시에서 무육일을 시행했다.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이 정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남아있다.

밥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 시대, 그림자도 있다. 맵고 짠 음식을 먹는 데다가, 고기 위주의 서구화된 식사가 늘면서 한국은 대장암 발병률 1위(10만명당 45명) 국가가 됐다. 국민소득과 육류 소비량은 비례하지만, 통상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으면 닭고기 소비가 다른 육류를 추월한다. 선진국일수록 상대적으로 건강에 좋은 백색육인 닭고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삼겹살 위주의 돼지고기 소비가 압도적이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의 한 족발집에서 갓 만든 족발을 식히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의 한 족발집에서 갓 만든 족발을 식히고 있다. 김홍준 기자

4년째 진행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전염병도 식탁의 큰 몫을 차지하는 축산물 공급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미 지난해 AI로 계란값이 폭등했다.

고기는 동물 복지, 환경 문제도 안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채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고기에 대한 유해성이 알려졌음에도 한국인에게 고기는 여전히 맛난 것, 귀한 것, 비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하지만 고기 소비가 늘면서, 육류는 공산품이 아닌 생명체에서 얻는 양식이기에 동물 복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역 인근의 '장호왕곱창'에서 내놓는 곱창은 이 집에서 직접 다듬는다. 정준희 기자

서울 서대문역 인근의 '장호왕곱창'에서 내놓는 곱창은 이 집에서 직접 다듬는다. 정준희 기자

정 교수는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로 인한 환경문제, 집약적인 사육으로 인한 동물복지 문제 등이 대두한다”면서도 “미식은 섬세하기 때문에 대체육 시장이 커져도 고기는 대체될 수 없는, 쉽사리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까. “그래도, 고기”라고.

서울 은평구 연서시장의 한 가게에 내놓는 돼지 머릿고기. 머릿고기는 대표적인 부속 고기다. 김홍준 기자

서울 은평구 연서시장의 한 가게에 내놓는 돼지 머릿고기. 머릿고기는 대표적인 부속 고기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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