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쓰레기 3000점 주운 대학 교수 “김정은 통치 스타일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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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자인데, 쓰레기를 줍고 다니니 ‘여기서 내가 뭐 하고 있나. 이게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보이스]

강동완(49) 동아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2년 넘게 우리 해안에 떠밀려온 북한 쓰레기 약 3000점을 모았다. 강 교수 연구실엔 북한 선전화, 도자기·과자·군복·화장품 등 북한 관련 잡화들과 북한 쓰레기가 가득했다. 연구실이 아니라 박물관 창고 같았다.

강동완(49) 동아대 북한학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동완(49) 동아대 북한학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원래 강 교수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북·중 접경지역에 자주 갔었다. 북한 국경 근처에서 망원렌즈로 북한군과 주민 생활상을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 공안에 미행도 당했다. 2019년엔 중국 비자도 끊겼다. 코로나 19 사태까지 닥치자 북·중 접경 지역에서 북한을 취재하기가 힘들어졌다. 대신 강 교수는 북한과 가까운 백령·연평도를 찾았다. 북한 쓰레기도 그곳에서 처음 봤다. 이후 학교가 있는 부산에서 왕복 20시간을 달려 매달 수차례 서해 5도를 찾기 시작했다. 북한 쓰레기는 겨울엔 북서풍을 타고 서해안으로 몰려왔다. 여름엔 동해안 영덕·포항·울산 앞바다까지 밀려왔다.

북한 쓰레기는 학술 가치가 얼마나 있을까. 강 교수는 “북한 쓰레기는 김정은의 북한 통치 방향과 북한 산업 미술 발전 양상 등 많은 걸 알 수 있는 중요한 하나의 지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쓰레기는 자신에겐 ‘보물’”이라고 했다.

울산 앞바다까지 출몰한 북한 쓰레기

주로 어떤 걸 주웠나.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제품의 포장지를 주웠다. 약 3000점 정도 모았다. 우유, 과자, 음료수, 치약, 칫솔, 비누, 위생용품, 의약품 등이다.
동해안도 북한 쓰레기가 많나. 서해와 다른 종류인가.
‘오일종합가공공장’에서 나온 우유 팩은 동·서해안 지역에서 함께 발견됐다. 지역 간 유통이나 장마당 거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 또 반대로 한 쪽 지역에서만 발견된 제품도 있다. ‘에스키모’라 불리는 하드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동해와 서해에서 약 35개 종류를 찾았는데, ‘콜라겐 에스키모’는 동해안에서 본 적이 없다. 반대로 동해 쪽에서 발견한 망고 단물(망고주스) 등은 서해안에 없었다.
강교수는 서해5도 해안가와 동해안에서 2년 넘는 기간 동안 북한 쓰레기 약 3000점을 직접 주워 모았다.

강교수는 서해5도 해안가와 동해안에서 2년 넘는 기간 동안 북한 쓰레기 약 3000점을 직접 주워 모았다.

모두 북한 쓰레기로 단정할 수 있을까.
북한 공장 명이나 ‘국규’(북한의 국가 규격)처럼 명확하게 북한 제품으로 규정할 근거가 필요하다. 이게 없는 건 수집 품목에서 뺐다. 가령 중국 선원들도 안 신을 법한, 실로 꿰매 기워놓은 고무신도 찾았는데, 북한 물건이라 규정할 단서가 없어서 수집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학계 등 주변 반응은.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보통 ‘쓰레기 학(學)’은 없지 않나. 북한 쓰레기는 북한의 제품 생산·유통방식을 추론할 자료는 되지만 그 자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북한 경제·사회를 읽어낼 한 지표는 된다고 본다. 아이스크림을 예로 들면, 북한도 ‘얼음보숭이’가 아니라 ‘아이스크림’이라 부른다. 제품 포장지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작게는 이런 언어 차이부터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까지 모든 분야의 맥락을 읽을 수 있다. 포장지마다 고유 색상이나 브랜드(상표)도 있다. 심지어 캐릭터도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모든 북한 주민들이 이 물건들을 쓰고 있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결국 ‘화려함 속의 빈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물건을 실제로 쓸진 의문이다.

초코파이·신라면·헬로키티…북한이 디자인 베끼는 진짜 이유

화려한 포장지, 북한 산업 디자인 발전 척도로 볼 수 있을까.
북한은 산업 디자인을 굉장히 강조한다. ‘태양절’(4월 15일)이나 ‘광명성절’(2월 16일)을 기념해 ‘국가산업미술전시회’를 연다. ‘인민들에게 친근한 것을 당이 만들어낸다’고 선전하며 제품에 사상성을 주입한다.
소비자 취향 저격, 북한에서 의미 있나.
북한 경제는 단순히 당 주도 계획경제 체제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침투했다. 예를 들면 음료수 1000개를 만들면 그걸 보급만 하는 게 아니라, 100개를 더 만들고 장사꾼들에게 이걸 판다. 나름의 시장경제 체계로 돌아간다. 북한 주민들도 취향이 생겨난 거다. 북한 당국도 그들을 소비자로 보고 ‘어떻게 하면 선택받을까’를 고민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제품 카피(복제) 이유도 알 수 있다. 한국 라면 포장지(신라면)와 비슷한 국수(라면) 포장지를 만들었다. 북한 주민들은 중국을 통해 라면을 접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국수 포장지 디자인에 이런 취향을 반영한 셈이다.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초코파이’도 베껴 ‘초콜렛트 단 설기’를 만들었다. 일부 계층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개인 취향을 고려한 산업 디자인이 나오는 셈이다.
한국 라면, 초코파이 포장지와 유사한 디자인의 북한 제품들. 강 교수는 "북한이 한국 제품에 익숙한 북한 주민들의 취향을 고려해 제품 포장 디자인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사진 강동완 교수

한국 라면, 초코파이 포장지와 유사한 디자인의 북한 제품들. 강 교수는 "북한이 한국 제품에 익숙한 북한 주민들의 취향을 고려해 제품 포장 디자인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사진 강동완 교수

‘헬로키티’ 등 국내외 캐릭터 카피도 보인다.
북한에서 중요한 건 ‘주체’다. 그들에게 ‘주체’라는 의미는 ‘전 세계의 기준이 자신들, 북한’이란 뜻이다. 세계 명작동화를 베껴 만화영화를 만들 때도 북한식 해석을 녹여낸다. ‘헬로키티’ 디자인 카피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을 따왔지만, 재해석하고 만들었다는데 의미를 둘 뿐이지, ‘해외 캐릭터를 베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
포장지 겉면에 QR코드와 바코드도 보인다.  
북한에도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늘고 있다. 나름대로 세계 기준을 따른다는 뜻이다. 실제로 ‘식품안전관리체계 인증을 받았다’며 ISO 인증 문구를 포장지에 넣기도 한다. 바코드와 QR코드가 찍힌 물건도 많다. 한국 스마트폰으로 북한 QR 코드를 찍어도 품명·생산공장·날짜 등 제품 정보가 나온다. 평양을 중심으로 대형 상점·백화점이 생기는 과정에서 재고 관리 목적으로 바코드와 QR코드 등이 붙은 게 아닐까 싶다. 다만 아쉬운 건 부정확한 생산 날짜 표기다. 생산 날짜를 알면 시간 흐름에 따른 제품 변천사를 알 수 있는데, 이게 안 적힌 물건이 많다.
북한에서도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며 QR코드를 통해 북한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제공한다. 한국 스마트폰에서도 북한 제품 QR코드가 읽힌다.

북한에서도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며 QR코드를 통해 북한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제공한다. 한국 스마트폰에서도 북한 제품 QR코드가 읽힌다.

상품 디자인 강조…체제 빈약함 감추려는 눈속임

북한이 산업 디자인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건 김 씨 부자간 권력 세습 시기와 맞물렸던 2011년 전후쯤이다. 강 교수는 “2010년 김정은의 ‘인민소비품 향상’이란 교시가 나온 이후 많은 자원이 상품 디자인 개발에 집중되고 있다”며 “똑같은 물건도 디자인·규격을 달리하자는 뜻에서 나온 다양화·다중화라는 말도 그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정은 체제로 바뀐 북한은 2012년부터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에서 경제발전 성과 일부로 ‘디자인’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김정은은 조선중앙TV 인터뷰에서 “(산업미술은)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을 추동하는 척후대(적은 인원으로 조직된 부대)”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탈북민들의 상품 디자인 인지 차이도 이 시기를 전후로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강 교수는 “2010년 이전에 탈북한 북한 주민들은 2010년대 이후 만들어진 북한 물건에 관해 물으면 ‘북한이 만든 게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만 강 교수는 “대다수 상품이 김정은의 현지 지도가 있던 평양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된 제품”이라며 “계층 간 격차와 이로 인한 공급 불균형이 있었을 것”이라고 그 한계를 지적했다. 결국 상품 디자인 발전도 체제 과시용 허세였을까.

김정은은 2011년 국방위원장 추대 이후 산업미술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인민 소비품 향상'이란 교시를 내리며 상품의 '다양화','대중화'를 강조했다. 노동신문

김정은은 2011년 국방위원장 추대 이후 산업미술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인민 소비품 향상'이란 교시를 내리며 상품의 '다양화','대중화'를 강조했다. 노동신문

상품 디자인 강조, 북한 체제의 빈약함을 감추려는 눈속임은 아닐까.
식품 주원료를 살펴보면 ‘화려함 속의 빈곤’을 알 수 있다. 북한에서 음료수라 말하는 ‘탄산 단물’의 주원료는 ‘8월 풀 당’(국화과에 속하는 풀인 8월풀에서 뽑아낸 당분)이다. 만약 북한이 설탕을 직접 만들 수 있거나, 수입할 수 있다면 굳이 ‘8월 풀 당’에서 단맛을 뽑을 필요가 없다. 이게 안 되니까 대체품으로 ‘8월 풀 당’을 쓴다.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양약이 없다. ‘고려의학’이란 이름으로 한약을 강조하지만, 해외에서 의약품 원료를 수입하거나, 직접 만들 기술이 없으니 소화제나 간염약도 모두 한방에 나온 풀에 기초해 만든다. 한국에서 40년 전에 썼던 화학조미료와 비슷한 ‘맛 내기’를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수집한 ‘맛 내기’ 종류만 40개가 넘는다. 한국은 경제적 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이런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한 셈이다.
북한은 설탕을 만들 능력이 없거나, 수입할 능력이 없어 설탕 대신 '8월 풀 당'으로 단 맛을 낸다. 사진 강동완 교수, 조선중앙TV 캡쳐

북한은 설탕을 만들 능력이 없거나, 수입할 능력이 없어 설탕 대신 '8월 풀 당'으로 단 맛을 낸다. 사진 강동완 교수, 조선중앙TV 캡쳐

‘북한 쓰레기’를 통해 본 김정은 식 북한 정치

우유 등 유제품 관련 쓰레기도 많이 보이는데.  
제일 많이 주운 게 우유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도 밝혔듯이 육아 정책을 가장 강조한다. ‘김정은의 교시에 따라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원활히 공급하고 있다’라는 기사가 북한에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북한 당국에서 육아 정책을 우선순위에 두니 우유 상품이 다양해졌다. 쓰레기로 떠내려온 양에서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육아 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원활히 공급하라"는 교시을 내리기도 했다. 강 교수 역시 "북한 쓰레기 중 우유 제품 포장지가 가장 많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육아 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원활히 공급하라"는 교시을 내리기도 했다. 강 교수 역시 "북한 쓰레기 중 우유 제품 포장지가 가장 많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주삿바늘·링거병·생리대 등 의약품 등도 쓰레기로 많이 나왔다.
대동강 주사기 바늘공장에서 만든 포장 상태의 작은 바늘을 찾았다. 찾기 어려운 물건이라 발견하고 만세를 불렀다. 또 평양 정성제약종합공장에서 만든 링거병을 가장 많이 주웠다. 김정은이 1년에 서너 차례 현지 지도를 할 만큼 관심이 큰 곳이다. 북한의 대다수 의약품을 이 공장에서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다른 의약품 공장 제품과 비교하면 쓰레기로 발견되는 비중이 10:1 정도다. 북한 여성들이 생리대 대신 광목천을 쓴다는 증언도 있었지만, 생리대 포장지도 심심치 않게 발견했다. 제품을 쓰면 생리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처럼 과대광고 문구가 적혀있다. 또 사용방법을 굉장히 친절하고 자세하게 써놨다.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은 아닌 듯했다. 다들 쓰는 물건이라면, 그림으로 자세히 사용방법을 알려줄 필요가 없지 않나.
앞으로 북한 쓰레기 연구 계속할 건가.
기존에 해왔던 취재와 연구를 계속하겠지만 쓰레기 수집 작업도 이어갈 생각이다. 북한의 최근 변화를 쓰레기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한 달에 한 번 이상 꼭 간다. 코로나 19 사태가 회복돼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두 연구 방식을 병행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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