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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러 석유 금수 반대 철회..."가스 공급 중단에도 대비해야"

중앙일보

입력

유럽연합(EU) 차원의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에 반대하던 독일이 기존 입장을 바꾸면서 EU가 이르면 다음 주 단계적인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EU의 독일 대표단은 "대체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러시아산 석유 전면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반대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독일의 이런 입장 변화는 EU 국가들이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단계적 금수 조치에 합의할 가능성을 높여주며, 이르면 다음 주에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U 회원국들도 27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제재 방안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했으며, EU 집행위원회도 조만간 추가 논의를 거쳐 다음 주 초 관련 제안서를 낼 예정이라고 WSJ는 전했다.  

독일의 PCK 정유공장. 로이터=연합뉴스

독일의 PCK 정유공장.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폴란드 항구 통한 석유 수입 가능해져  

그간 EU의 러시아산 석유·가스 수입은 러시아 정권에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을 대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독일 등 일부 EU 회원국들은 경제적 영향을 고려해 러시아산 석유·가스 금수 조치를 반대해왔다. 싱크탱크 브뤼겔의 추산에 따르면 EU가 수입하는 석유 전체에서 러시아산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7%이고, EU가 석유 수입 비용으로 매일 러시아에 지불하는 돈은 4억 달러(약 5075억원)다.

독일의 입장이 이처럼 달라진 건 폴란드와의 합의로 그단스크항을 통한 석유 수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EU 관리들은 설명했다. 현재 독일 슈베트 지역에 있는 PCK 정유공장은 러시아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산 석유를 공급 받고 있다. PCK 공장과 가까운 독일의 항구는 초대형 유조선이 정박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지만 그단스크항을 통해 다른 나라 석유를 들여올 수 있게 됐단 얘기다.

앞서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은 안나 모스크와 폴란드 경제 장관과 회담 후 "이제 독일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가 가능해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의 PCK 정유공장. 로이터=연합뉴스

독일의 PCK 정유공장. 로이터=연합뉴스

"가스 중단에도 대비를"...우크라에 중화기 지원  

독일 내에선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조치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8일 "독일이 (폴란드와 불가리아의) 다음 차례가 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는 4월분 가스대금을 자국이 요구한 루블화로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3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러시아가 독일에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경우 독일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하벡 장관은 "이제 우리는 가스에 대해서도 같은 일(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이날 의회 결의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장갑대공포(자주대공포)등 중화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무기 지원과 대러 제재 면에서 소극적이란 지적을 받았지만, 최근 들어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확대와 대러시아 제재 강화가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이날 독일 에너지기업 우니퍼는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결제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며 루블화 지불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니퍼는 대금을 러시아 현지 은행에 유로로 지불해 루블화로 자동 환전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때문에 결국 독일이 러시아에 일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지불할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황이다.

 독일이 우크라이나군에 지원 예정인 게파르트 자주대공포. AFP=연합뉴스

독일이 우크라이나군에 지원 예정인 게파르트 자주대공포. AFP=연합뉴스

유가상승...영향 전망 엇갈려  

EU의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의 영향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앞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이에 대해 "국제 유가를 상승시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러시아의 석유 수출이 줄어도 수출 가격이 올라 러시아에 부정적인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EU의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안이 나올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 유가는 상승했다. 28일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6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3.34달러(3.3%) 오른 배럴당 105.3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또 헝가리·이탈리아·오스트리아·그리스 등 EU의 일부 회원국들은 여전히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이라고 WSJ는 전했다. EU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기 위해선 27개 회원국 전체의 동의가 필요하다. 

반면 일각에선 석유 저장 시설이 부족한 러시아는 판매처를 찾지 못할 경우 석유 생산을 줄여야 해 향후 생산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석유 기업의 수입이 줄면 러시아 정부의 재정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러시아 연방 예산의 45%가 석유와 가스 수출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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