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푸틴 모방하며 거칠어진 김정은, 남한 정복 프로그램 연구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대적인 열병식을 개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문위원장이 북한군을 향해 손을 들고 있다. [노동신문]

북한이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대적인 열병식을 개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문위원장이 북한군을 향해 손을 들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모방하고 있다는 외신의 분석이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잦아진 도발은 우연이 아니라는 관측이다.

"푸틴 우크라서 실패해야 독재자들 조심"

2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의 외교·안보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략을 채택하는 김정은’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최근 ‘핵 무력 위협’ 행태는 석 달 전 푸틴 대통령을 완벽하게 묘사(perfectly describe)하고 있다”면서 “한국과 일본에게는 미국의 ‘전략적 인내’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짚었다.

“北, 푸틴 보며 핵 사용 전략 바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전날 열병식을 성대히 거행했다면서 각종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공개했다. [노동신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전날 열병식을 성대히 거행했다면서 각종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공개했다. [노동신문]

로긴은 “과대망상에 빠진 전체주의 독재자 김정은은, 이웃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공격의 위협을 가함으로써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2년간의 고립을 깼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최근 미국 본토를 사정권으로 두는 ICBM을 2차례 시험 발사한 데 이어 2017년 이후 처음으로 핵 실험을 준비하는 정황 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칼럼은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김 위원장의 거칠어진 언사와 행동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리스크·억지력·긴장 고조·벼랑 끝 전술에 대한 ‘지정학 교과서’를 다시 쓰는 동안, 그의 제자 김 위원장도 (이를) 분명히 학습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 정가가 유럽의 위기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김 위원장은 동아시아에서 판돈을 키우고 있다”면서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양 대학 교수는 로긴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전략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며 “수십 년 전 그들이 핵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는 억지력과 자위력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 그들은 언젠가 핵을 통해 남한을 ‘정복’할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로긴에 따르면, 란코프 교수를 비롯한 한국 내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두 가지 방식으로 푸틴 대통령을 모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공세적인 재래식 전투태세를 지향하고 ▶향후 남한과의 분쟁에서 미국 등 서방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핵 독트린’을 변경하는 방식이다. 란코프 교수는 “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반드시 한국을 공격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김 위원장이 보다 무모한 행동을 할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 사용 가능성 거론 잦아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5일 북한 열병식에서 “언제든 핵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며 남측을 향해 전술핵 위협을 고조시켰다.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도 지난 5일 발표한 담화에서 핵 무력 사용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런 상황까지 간다면 남조선군은 괴멸, 전멸에 가까운 운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긴은 이처럼 잦아진 북한의 '핵 위협'에 주목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를 답습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행동에 나선 지금 한·일 정부에게는 북핵 협상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서다. 로긴은 “차기 한국 정부는 평양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한국의 방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고, 일본 총리는 최근 (이같은 이유로) 한·일 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선언했다”고 강조했다.

“한국, 나토식 군사동맹 필요 느낄 수도”

로긴은 북한의 빠른 변화를 고려할 때 “미국이 한·일 양국의 군사협력 강화 요청에 응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한국에게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이상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군사 동맹에 대한 욕구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명한 약속을 가진 확고한 방어 동맹만이 공격적인 독재자를 저지할 수 있다”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훈처럼, 한국이란 (군사적) 제재를 받지 않고 공격할 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김 위원장에게 확신시킬 더 강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위기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로긴의 전망이기도 하다. 로긴은 “민주적인 이웃을 위협하는 모든 독재자를 저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이 실패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평양과 베이징의 지도자들이 이 전철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하는 김 위원장의 언행을 무시해선 안 된다”며 서방은 핵이 가진 억지력과 위험성에 관한 규칙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이클 오핸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로긴과의 인터뷰에서 “억제력 강화 외에도, 미국은 북한과의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기존의 대북 제재를 제한적으로 완화해주면서 대신 '북핵 프로그램 동결'을 얻어내야 한다”면서다.

오핸런 연구원은 "(서방의) 문제는 그가 위기를 일으키도록 내버려 둔 뒤 반응한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푸틴에게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김정은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