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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도 예외 없다...美, 호주 기업‧영국인에 제재 위반 ‘철퇴’

중앙일보

입력

미국이 호주ㆍ영국ㆍ스페인 등 동맹과 우방에 대해서도 촘촘한 대북 제재망을 가동하고 있다. 북한의 의미 있는 행동 변화 전 제재 완화는 없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전망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뉴시스.

호주 기업에 76억원 벌금 폭탄

미 재무부는 25일(현지시간) 호주 물류업체 '톨 홀딩스'가 대북 제재를 비롯한 각종 제재 위반을 인정하고 613만달러(약 76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3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선박, 항공, 철도를 이용해 북한, 이란, 시리아 등으로 화물을 운송한 혐의 등이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기업과의 거래 건수는 2958건, 총액은 4840만 달러(약 606억원)에 이른다.

이런 과정에서 최소 네 곳의 미국 내 금융 기업을 통한 거래가 이뤄졌는데, 이 또한 제재 위반이다. 톨 홀딩스는 지난 2015년 5월쯤 내부적으로 제재 위반 가능성을 인지했지만, 일부러 송장에 제재 대상 기관을 명시하지 않도록 아랍에미리트(UAE)와 한국의 계열사에 지시하기도 했다.

다만 재무부는 톨 홀딩스가 제재 위반을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조사에 성실히 협조했다는 판단으로 약 76억원 선으로 벌금을 깎아줬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같은 날 "당초 벌금은 약 8억 2600만 달러(약 1조 308억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가 25일(현지시간) 호주 물류업체 '톨 홀딩스'가 대북 제재를 비롯한 각종 제재 위반을 인정하고 613만달러(약 76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 보도자료 캡쳐.

미 재무부가 25일(현지시간) 호주 물류업체 '톨 홀딩스'가 대북 제재를 비롯한 각종 제재 위반을 인정하고 613만달러(약 76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 보도자료 캡쳐.

스페인·영국인은 가상화폐 제재

미 법무부는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스페인 국적자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와 영국인 크리스토퍼 엠스를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관련 기술을 빼돌려 북한에 이득을 준 혐의로, 이들을 기소한 뉴욕 연방 검찰 측은 "북한의 이해관계에 딱 맞게 제재를 회피할 방법을 알려줬다"고 지적했다.

베노스는 2000년 스페인에 본부를 둔 친북 단체인 조선친선협회(KFA)를 설립했고,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 특사' 직함을 받는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친분이 있다고 공공연히 밝혀온 인물이다. 베노스와 엠스는 최근 실형을 선고 받은 미국인 암호 화폐 전문가이자 이더리움 개발자인 버질 그리피스와 공모하기도 했다고 미 법무부는 밝혔다.

엠스와 그리피스는 2019년 4월 평양을 찾아 암호 화폐 관련 콘퍼런스를 열었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엠스는 "조선친선협회의 기술 자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 "블록체인에 대해, 특히 북한의 금융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알려주겠다"며 "여러분은 미국이 전 세계 돈의 흐름을 얼마나 꽉 잡고 있는지 알 것이며, 이는 매우 부당하다"고 말했다. 콘퍼런스에선 질의응답도 받았고, 그리피스는 설명 과정에서 화이트보드에 "제재는 사라져라, 앗싸"(no sanctions, yay)라고 적었다고 한다.

베노스와 엠스에 위반 혐의가 적용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은 최고 형량이 20년이다. 다만 이들의 행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미 법무부가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스페인 국적, 친북 단체 조선친선협회 회장), 크리스토퍼 엠스(영국인)를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재판에 부쳤다고 밝혔다. 뉴욕 연방 검찰청의 공소장 캡쳐.

미 법무부가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스페인 국적, 친북 단체 조선친선협회 회장), 크리스토퍼 엠스(영국인)를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재판에 부쳤다고 밝혔다. 뉴욕 연방 검찰청의 공소장 캡쳐.

대북 제재 죄기 본격화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올해 들어서만 네 차례의 대북 독자 제재를 가하고 유엔 차원의 추가 제재도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동맹과 우방의 기업 및 개인의 제재 위반을 공개적으로 단속한 건 제재 적용에는 예외가 없다는 원칙을 다시 표명한 것일 수 있다.

한국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실제 지난 2020년 4월 IBK 기업은행은 국내 무역 업체의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행위에 연루돼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미 사법당국에 8600만 달러(한화 약 1049억원)를 물기도 했다.

그리피스 일당 처벌은 북한의 새 돈줄이자 제재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는 암호 화폐 탈취 등 불법 사이버 활동 관련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신호탄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국제긴급경제권한법을 적용한 건 새 법률 입법 없이도 기존 법령을 최대한 활용해 관련 제재를 더욱 촘촘하게 운영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가상화폐 관련 행위는 아직 명시적으로 대북 제재 대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갈수록 해당 분야가 '구멍'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달 공개된 연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 패널 보고서엔 "북한 해커들이 2020년부터 2021년 중반까지 북미, 유럽, 아시아의 최소 3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5000만 달러(약 600억원) 이상을 훔쳤다"는 한 회원국의 분석이 담겼다. 또한 민간 사이버안보 회사를 인용해 "북한이 지난해에만 4억 달러(4900억원)의 암호 화폐를 탈취했다"는 대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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