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라운지] "인맥으로 사업한다는 건 옛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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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은 요즘 들어 전 세계적으로 부쩍 관심이 높아진 나라다. 자원 때문이다. 원유뿐 아니라 우라늄.구리 등 광물도 풍부하다. 벌어들인 오일 달러로 각종 사회간접자본 건설도 한창이다. 건설.정보기술(IT) 기업들이 들어가 할 일이 지천이다. 세계가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이달 초 서울 한남동 대사관에서 만난 둘라트 바키셰프(36.사진)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는 "최근 들어 한국 기업들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이 밀려든다"고 밝혔다. 대체로 카자흐스탄 내에서의 자원개발이나 건설사업 기회를 잡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한국 기업인들이 카자흐스탄을 좀더 글로벌한 시각으로 넓게 봐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카자흐스탄이 동쪽으론 중국과, 북쪽과 서쪽으론 러시아와 닿아 있어 주변에 인구 3억 규모의 거대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요컨대 카자흐스탄에 제조 기지를 세우면 큰 시장에 손쉽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으니 투자를 많이 해달라는 요청이다.

바키셰프 대사는 "카자흐스탄은 계약을 절대 존중하고, 시장경제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 정책 불투명에 따른 위험이 적다"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직후에는 재건자금 마련에 급급해 외부 에너지 기업들에게 유전을 싸게 넘긴 '손해 보는 계약'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계약을 파기하자고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문이 잘못 전해져 한국 기업인들 중에 '인맥'을 활용해 카자흐스탄에서 사업권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카자흐스탄은 공정한 시스템과 입찰을 통해 사업권 부여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바키셰프 대사는 주한 외교가에서 손꼽는 한국통이기도 하다. 카자흐 국립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95년 스스로 선택해 연세대로 유학을 왔다. "한국이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뤘는지 배우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때 배운 한국어 실력을 살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는 정상회담 통역을 맡기도 했다.

96년에서 2003년까지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근무한 뒤 잠시 유엔 주재 대표부로 옮겼다가 올 초 주한 대사가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현재 카자흐스탄의 최연소 대사다.

한국말이 유창한 데다 외모도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일제시대 소련으로 이주한 한국인과 그 후손)이 10만 명이나 살고 있는데, 교육열이 높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등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며 "문화적 유사성도 한국 기업이 카자흐스탄에서 현지 생산법인을 운영하는 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권혁주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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