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돈줄 죄기 = 수요 억제' 집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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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주택 공급에 냉소적인 청와대와 이런 청와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관료들'이 노무현 정부의 집값 불안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새집을 짓기보다는 세금을 늘리거나 돈줄을 조여 집을 사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수요 억제' 정책에 매달렸다. 또 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 등 정부 부처는 수도권에서 인구 증가에 비해 공급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청와대를 의식해 공급 확대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청와대의 무지와 관료들의 책임 회피가 집값 불안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 주택 공급 무시한 청와대=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최근 청와대 브리핑에서 "정부가 갑자기 공급 정책으로 선회한 것이 아니라 부동산 세력과 언론이 이를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지난해 8.31 정책에 송파.김포신도시 건설계획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공급 정책으론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상승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수요 억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대규모 공급 확대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청와대 측에 제안했지만 먹히지 않았다"며 "심지어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기 때문에 특단의 공급 정책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 청와대 인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추병직 건교부 장관이 지난해 6월 신도시 건설계획을 밝혔다가 나흘 만에 이를 철회한 것도 당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반대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 3월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가 "실질적인 공급 확대 방안을 포함해 실수요자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라"고 간부회의에서 지시했다가 당일 부랴부랴 정정소동을 벌인 것도 청와대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일순간에 공급 확대로 방향을 돌리면서 부동산 정책 조정 과정에서 오히려 청와대가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관계 부처 간에 조정 과정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이를 경제부총리가 조정하는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 청와대 경제보좌관.정책실장 등이 간여하지만 실무적인 사안은 모두 관계 부처에서 결정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3.30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실무선에서 해결할 모든 사안에 청와대가 개입했지만 공급 정책에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부동산 정책의 결정 기능이 청와대에서 관련 부처로 넘어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 책임 회피한 경제 관료=경기도 용인 등지의 마구잡이개발이 문제가 되면서 택지로 활용할 수 있었던 준농림지가 2003년부터 관리지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관리지역 중 개발 가능 지역과 불가능 지역이 아직까지 세분화되지 않았다. 준농림지역을 개발해 집을 짓는 게 현재로선 불가능해 그만큼 민간 택지가 줄어든 것이다.

또 신도시 건설은 지구 지정에서 입주까지 5~7년 걸린다. 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 공공택지 공급을 늘렸다고 하지만 실제 주택 공급은 일러야 2008년에나 가능하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고 용적률을 죄는 등 주택공급량을 줄이는 정책을 펴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수도권에 공급된 주택은 19만7900가구로 2002년보다 47% 줄었다. 서울의 경우 새로 지어진 주택이 2002년 15만9000가구에서 지난해 5만1000가구로 감소했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정부 관료들이 사실상 이를 외면해 온 결과다.

건교부 고위 관계자는 "공급 확대 정책 시기를 놓친 감이 없지 않다"며 "주택 공급이 늘지 않는 내년까지가 집값 안정 여부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방향이 한번 바뀌자 이제 공급 확대를 위해서라면 앞뒤 안 가리고 정책을 남발하는 구태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관련 규제를 완화해 도심 다세대.다가구를 늘리고,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주택으로 간주돼 인기가 크게 떨어진 오피스텔을 확대하는 방안을 대표적인 '물량 공세 정책'으로 보고 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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