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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중재안 멈춰세운 국힘 최고위…"부패완판" 尹의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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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최고위는 22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검수완박' 중재안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김상선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최고위는 22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검수완박' 중재안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김상선 기자

여야 원내대표가 22일 합의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이 결국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멈춰섰다. 국민의힘 최고위는 25일 오전 1시간 반에 걸친 회의 끝에 중재안을 민주당과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기존 합의를 뒤집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결정에 더불어민주당은 “파기가 맞다면 28~29일로 예정된 본회의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다”(진성준 원내수석)고 법안의 조기 처리 의지를 드러냈다. 여야의 갈등 시계가 합의 이전으로 돌아가며 전운이 다시 감돌기 시작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 뒤 취재진과 만나 “선거 범죄, 공직자 범죄가 검찰 직접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에 대해 국민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민주당과) 재논의하자는 것이 최고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합의 파기 시 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고 예고한 데 대해서는 “재논의라는 단어를 민주당이 강박적으로 이용하면 국민이 안 좋게 볼 것”이라며 “재논의하자는 것을 가지고 민주당이 국민을 압박하는 언사를 하는 것인지 의아하다”고 반박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을 두고 민주당과 협상했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날까지만 해도 “여야 합의사항은 지켜져야 한다”고 했지만 이날은 한발 물러섰다. 권 원내대표는 “(선거·공직자 범죄) 문제에 대해 정치인이 수사받기 싫어서 ‘짬짜미’ 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많은데, 국민이 오해하게 한 것은 정치권 책임”이라며 “민주당도 열린 마음으로 재논의에 응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최고위 직후 박병석 국회의장을 찾아 재논의하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박 의장은 취재진에게 “지금은 말을 아낄 때”라고 했다.

최고위 참석자들에 따르면, 재논의 결정은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한다. 중재안 ‘거부’가 아니라 ‘재논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어쨋든 중재안 합의를 뒤집은 모양새다. 검사 출신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재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 것을 고려하면 향후 인사청문회, 각종 법안 처리 등을 두고 민주당과의 강 대 강 대치까지 각오한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왼쪽),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관련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후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왼쪽),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관련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후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여야 합의가 사흘 만에 뒤집힌 상황을 두고 국민의힘 내에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3선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 22일 박 의장의 권유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와 권 원내대표가 각 당 의총을 거쳐 합의안에 서명했을 때만 해도, 별다른 충돌 없이 검수완박 분쟁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각계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국민의힘 지지층들은 “저항 한번 못해보고 검수완박에 동의했다”고 성토를 쏟아냈고, 검찰 조직에서도 불만 여론이 분출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과 이 대표까지 잇따라 우려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달라진 기류도 국민의힘 최고위의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검수완박 이슈에 언급을 삼가던 윤 당선인은 24일 오전 배현진 대변인을 통해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냈고, 이날 오전에는 “정치권 전체가 헌법 가치 수호와 국민의 삶을 지키는 정답이 무엇일까 깊게 고민하고 중지를 모아달라”는 뜻을 밝혔다. 같은 날 장제원 비서실장도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에서 사퇴할 때 말한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헌법정신을 크게 위배하는 것이고 국가나 정부가 헌법정신을 지켜야 할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전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윤 당선인이 박병석 중재안에 제동을 걸었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재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가는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다”며 “반신반의했던 의원들도 윤 당선인의 입장이 나온 뒤 재논의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검찰 간부와도 의견 교류했는데…” 난감한 권성동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에는 곤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된다. 권 원내대표가 중재안에 합의한 것을 두고 이날도 당 안팎에서 여러 뒷말이 쏟아졌다. 야권 관계자는 “상세한 의견 교환까지는 아니더라도 권 원내대표와 윤 당선인 측 사이에 직·간접적인 소통이 있었을 텐데 ‘미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가 덜컥 중재안을 합의한 데는 검찰에 시달렸던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권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 청탁 혐의로 수사 및 재판을 받다가 6년 만인 올해 2월 무죄가 확정됐다. 그는 중재안 합의 직후 이를 언급하며 “검찰의 직접 수사는 굉장히 피해가 크다. 나도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 원내대표가 검찰 측의 거센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원내 관계자는 “중재안 합의 과정에서 권 원내대표가 검찰 고위 관계자와도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며 “이 검찰 관계자가 보완 수사권 유지 등이 꼭 필요하다는 뜻을 전하며 대체로 중재안에 동의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후 검찰이 크게 반발하자 권 원내대표가 당혹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와 권 원내대표 간에 미묘한 갈등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표가 최고위에서 중재안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권 원내대표는 “그 이야기는 나보고 그만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발했다고 한다.

의총에 절반도 참석 안 해…“검수완박 순진하게 접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 관련해 박병석 국회의장과 면담을 위해 의장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 관련해 박병석 국회의장과 면담을 위해 의장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앞서 중재안에 손을 들어준 국민의힘 의원들을 두고서는 “대선 승리에 심취해 민생과 직결되는 검수완박 이슈에 너무 순진하게 접근했다”(야권 원로인사)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22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중재안을 추인할 때 참석 의원은 절반도 못 미쳤다고 한다.
 한 참석 의원은 통화에서 “우려를 표한 의원들도 일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권 원내대표가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의원들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며 “‘의총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민의를 반영해야 했다’거나 ‘쉽게 생각했다’고 자성하는 의원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반론도 있었다. 한 원내 관계자는 “민주당이 171석을 차지한 국회 구도상 우리 당이 버텼다면 민주당은 원안을 밀어붙였을 것”이라며 “인사청문회와 각종 법안 처리 등 윤석열 정부 초기 민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르면 이날부터 재협상을 이어갈 전망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를 오후 8시부터 소집하는 등 강경한 태도여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국민의힘이 중재안에 덜컥 합의했다가 재논의 카드를 꺼내든 것은 명백한 패착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합의 전만 해도 ‘민주당의 독주’라고 여론전을 펼 수 있었는데, 현재로선 중재안을 반대할 명분이 약해졌다”고 꼬집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을 찾아 한 시간 동안 머물렀다. 권 원내대표는 윤 당선인을 만났냐는 질문에 “아니다. 장 비서실장과 얘기를 나눴다”고 답했지만, 당 관계자는 “현 사태에 대해 당선인과도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나누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와 대화를 나눴냐는 질문에는 “박 원내대표가 통화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논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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