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집통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집(家)의 사전적 의미는 ‘추위·더위·비바람을 막고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집은 ‘사는 곳’(Living)일 뿐 아니라 ‘사는 것’(Buying)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금자리이면서 전 재산이자 주요 재테크 수단이라서다. 국내 가구 평균 보유자산 79.9%가 부동산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부동산 정책에 가장 공을 들이는 이유기도 하다.

대표적인 ‘집통령’(집+대통령)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손꼽힌다. 집권 4년 만에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214만호를 지었다. 당시 전국 주택 수(640만호)의 30%를 단기간에 쏟아낸 공급 폭탄의 부작용은 만만찮았다. 건설자재 품귀는 부실공사로 이어졌고, 엉성한 도시계획은 출·퇴근 교통 대란을 낳았다.

외환위기(IMF)를 극복해야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규제 완화 카드를 빼 들었다. 양도세 한시 면제, 분양권 전매 허용, 분양가 자율화 등 풀 수 있는 규제는 다 풀었다. 유례없는 암흑기를 겪던 주택 시장은 기운을 차렸지만, 투기 바람이 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폭풍 규제’를 했다. 분양권과 재건축 조합원 지분 전매를 금지했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종합부동산세 등을 모두 강화했다. 규제 강화는 되레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집권 5년간 전국 아파트값(국민은행)은 33%, 서울은 55% 뛰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빚내서 집 살 환경’을 조성했다. LTV(70%)·DTI(60%) 상향해 3000만원만 있으면 1억짜리 집을 살 수 있었다. 당시 뛰는 전셋값은 잡았지만, 하우스푸어를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 폭탄’을 퍼부었다. 집을 사도, 보유해도, 팔아도 무거운 세금을 내야 했다. 26번의 부동산 대책을 통해 핀셋 규제에 나섰고 그때마다 규제를 피한 지역의 집값이 급등하며 ‘누더기 규제’라는 오명을 받았다. 현 정권 들어 전국 아파트값은 37%, 서울은 61%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신규주택 250만호, 재개발·재건축 완화 같은 굵직한 부동산 공약이 많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부동산 정책 발표 시점 연기가 되레 반가운 것은 잦은 규제로 인한 피로도와 ‘제대로 된’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일 테다. 어떤 집통령이 될지 결정은 당선인의 몫이다. 반면교사 삼을 선배 대통령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