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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고교생 논문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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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와 강동현(미국 시카고대 박사과정)씨가 최근 ‘논문을 쓰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알아봅시다’라는 연구 결과를 온라인에 발표해 화제다. 이들은 2001~2021년 해외학술지에 등재된 213개 고등학교 학생의 논문 데이터를 전수 조사했다.

영재학교·과학고·자율고·외국어고 및 서울대 진학 랭킹 상위 50개 일반고 재학생을 찾아낸 결과 980명, 논문 558건이 추려졌다. 학생 저자 67%는 논문 출간 이력이 한 번, 13%는 두 번에 그쳤다. 연구 능력이 뛰어나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한 사람보다 대입 일회용으로 논문을 활용한 이들이 훨씬 많으리라 추정되는 이유다.

 자율고·외고·일반고에서 컴퓨터공학(27.4%)과 의학(13.6%) 논문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의심스러운 포인트다. 2014년과 2018년 논문 기재 규제에 따라 자율고·외고·일반고의 논문 등재 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사라지다시피한 것도 추론을 뒷받침한다. 교육부는 2014년 생활기록부에 논문 기록을 금지했다. 2015학년도 대입부터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하고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꿨다. 자기소개서에 논문을 기재하는 꼼수는 남아있었으나 2018년엔 그마저 금지했다. 단, 과학고나 영재학교의 논문 편수는 대입 제도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는 2009년 외국어고 재학 시절 고교생임을 밝히지 않고 해외 의학 학술지에 논문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강 대표는 "이 경우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 한 알 방법이 없다. 데이터로 드러나지 않는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강씨 등이 이번 조사에 들인 시간은 딱 4일이다. 이들은 게재료만 내면 논문을 실어주는 '약탈적 저널' 여부를 구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KCI 국내논문을 대상으로 한 추가 분석도 이르면 이번 주 중 끝낼 계획이다.

교육부는 2019년 10월, 2년간 진행한 미성년 공저자 논문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는 그로부터 2년 반이 흐른 지난 25일에야 최종 결과를 공개했다. 총 82명의 미성년자가 부당하게 저자로 등재됐으며, 10명이 대입에 활용했고 5명이 입학취소됐다.

'아빠 찬스'에 분노하는 여론에 편승해 이미 바뀐 대입 제도만 뒤흔드는 건 변죽을 울리는 일이다. 연구 윤리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