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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명 빈곤 탈출에 인생 걸어"…대나무 칫솔 만드는 치과의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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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대나무가 하루 최대 1m씩 자란다는 사실 아시나요? 치과의사 출신 박근우 닥터노아 대표는 우연히 해외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창업가로 커리어를 바꾸게 됩니다. ‘지속가능한’ 구호 활동을 위해, 대나무로 오지 주민들의 소득원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시작이었죠.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대나무 칫솔입니다. 이 칫솔은 연간 100만 개씩 팔리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치과의사가 됐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된 박 대표, 그를 직접 만나 생생한 창업기를 들어봤습니다.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환경문제 해결하는 '힙한' 브랜드” 4화 중 일부입니다.

서울 구로구 닥터노아 사무실 인근에서 폴인과 만난 박근우 대표. ⓒ최지훈

서울 구로구 닥터노아 사무실 인근에서 폴인과 만난 박근우 대표. ⓒ최지훈

우연히 떠난 봉사활동, 인생의 커리어를 바꾸다

Q. 치과의사를 하다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치과의사 일을 조금 쉬고 있을 때, 우연히 스리랑카로 2주 정도 구호 활동을 떠나게 됐어요. 마침 시간이 있으니까 관광 겸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는데, 가서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이후 여러 나라에서 구호활동을 다니며 생각이 많아졌죠.

단기 의료봉사나 현지 구호활동을 하다 보니까 봉사활동이 저 사람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그라민 뱅크*'라는 회사를 알게 됐어요. 방글라데시에 있는 소액대출 회사인데, 신용이 없는 가장 빈곤한 사람들(women, illiterate, and unemployed people)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을 제공해주는 곳이에요.

기존 제도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담보도 없이 대출해주었죠. 처음에 많은 사람의 비웃음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후 대출 상환율이 99.6%에 이르렀고(2017년 기준), 대출받은 사람 가운데 58%가 빈곤에서 탈출했어요. 이 회사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죠.

*그라민 뱅크 - 1976년 설립된 은행으로 현재 2,600개 지점이 있고, 900만 명이 넘게 대출을 이용했다.
너무 멋있더라고요. 구호활동이 아니라 기업 단위로 접근하는 게 좀 더 지속가능한 솔루션이 될 것 같았어요. 지역 자원을 활용해 소득자원을 만들어준다면, 그들도 자녀를 노동현장 대신 학교에 보낼 것이고 그럼 좀 더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죠.

Q. 창업 아이템으로 대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아이템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월드비전 ADP(Area Development Program) 프로그램으로 에티오피아에 방문하게 됐어요. 그곳에 굉장히 넓은 대나무밭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의료봉사를 다녀온 오지 마을에 대나무밭이 많았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자료 조사를 시작했죠. 아니나 다를까, 대나무가 자라는 지역과 빈곤 벨트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대나무가 자라는 곳은 어김없이 빈곤한 지역이 많았죠.

그러다 대나무 생산지의 빈곤 문제를 다룬 논문을 하나 읽게 되었어요. 이 논문(Prosperity Initiative)에 따르면 베트남 탕호아성 북서부 지역에 베트남 최대 대나무 생산지가 있는데, 이곳 월 평균 가족소득이 68달러(약 8만 2800원)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빈곤한 곳이라고 해요. 그래서 빈곤으로 인한 모든 폭력적 경험을 지역 주민들이 겪고 있죠.

그런데 누군가 이 지역의 대나무를(중국 대나무 가격의 80% 수준으로) 수매해서 소득자원으로 만들어 준다면, 16만 3000명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니까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요.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16만 3000명을 빈곤 탈출시킬 수 있다면, 내 인생을 모두 걸어도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대나무를 소득 자원으로 바꾸려면 이걸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게 뭘까를 고민했어요. 구글에 검색해 보다가 대나무 칫솔이 떠올랐고, 치과 의사니까 칫솔은 잘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상관은 없습니다. (웃음) 그땐 사업을 잘 몰랐고, 그래서 용감했던 것 같아요.

대나무를 넣고 열과 압력을 가해 찍어내는 핫프레싱 기계. ⓒ닥터노아

대나무를 넣고 열과 압력을 가해 찍어내는 핫프레싱 기계. ⓒ닥터노아

'망했구나!'라는 기로 앞에서 개발한 '핫프레싱' 기술

Q. 처음 칫솔을 만든 과정이 궁금합니다.

추가로 조사하면서 이미 대나무 칫솔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중국에 직접 가봤죠. 중국도 대나무 생산지는 내륙에 있어서 빈곤한 지역인 경우가 많아요. 대나무 공장이라고 해서 가봤더니, 초가집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쭈그려 앉아 만들고 있더라고요. 이런 식이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대나무 칫솔도)플라스틱만큼 제품 퀄리티나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대나무 원자재는 플라스틱보다 저렴해요. 플라스틱 칫솔은 석유를 시추하고, 다시 석유화학 공장으로 옮겨 플라스틱 잉곳(덩어리)을 만들고, 이걸 다시 칫솔공장으로 가져와서 용융*하고 냉각해서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생각보다 원자재 가격이 꽤 높아요.

*용융: 고체에 열을 가해 액체로 만드는 것
문제는 퀄리티였죠. 중국에서 대나무 칫솔 만드는 걸 보니 식모 과정에서 불량이 심하게 나오더라고요. 2개를 만들면 1개를 버려야 하는 수준이었죠. 중국은 중고 플라스틱 칫솔 식모기를 가져다가 대나무 칫솔 식모를 하고 있었는데, 대나무는 플라스틱과 물성이 달라 식모 조건도 달라져야 해서 먼저 대나무 칫솔 전용 자동 식모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광저우에 가면 우리나라 청계천 시장처럼 도면만 가져가면 뭐든 만들어주는 공장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한 달 반 정도 살면서 대나무 칫솔 전용 식모기를 만들었어요. 근데 이게 광저우에선 잘됐는데 한국에 들여오자마자 안 움직이는 거예요. 그때 엄청 당황했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똑똑한 동료도 모으고, 기계도 만들었는데 기계가 안 움직였으니까요. '망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여파로 팀원 8명 중 5명이 나갔죠. 결국에는 인턴 한 명만 남았어요. 그때 저도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Q.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냥 '어떻게 살아남지?'만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지금 회사의 CTO인 이경태 박사를 만나게 됐어요. 당시 이경태 박사는 서울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네팔에서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소셜 벤처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네팔의 산간 지역이 무척 추운데, 전기가 있다면 난방이 가능해지니까 너무 필요한 사업이었죠.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폴인과 인터뷰 중인 박근우 대표 ⓒ최지훈

폴인과 인터뷰 중인 박근우 대표 ⓒ최지훈

마침 그 친구도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제가 제안을 한 거죠. 혹시 "나와 함께 16만 3000명 빈곤에서 탈출시키고 노벨평화상 받아볼 생각 없냐?"고요. 당시 기계가 작동하게만 해준다면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함께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이경태 박사가 합류하며 일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때 발견한 기술이 핫프레싱 기술이에요. 원래는 자동차 보닛 등을 제작할 때 쓰는 기술인데, 쉽게 말해 붕어빵 틀 같은 것에 대나무를 넣고 열과 압력으로 찍어낸다고 보면 돼요. 이 기술의 장점은 대나무를 누를 때 내부의 당이 표면으로 빠져나오면서 자동으로 코팅돼 곰팡이가 생기는 걸 막아줘요. 또 대나무를 찍어 누르면 밀도가 높아져서 모가 잘 빠지지 않고요. 질감이랑 색도 입힐 수 있죠.

그동안 대나무 칫솔이 플라스틱 칫솔보다 비쌌던 건, 프로세스 문제였어요. 프로세스가 올드해서 제조 과정에서 불량이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죠. 그런데 핫프레싱 기술을 통해 규격화가 가능해진 거예요. 규격화가 가능하다는 건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해요.

닥터노아의 대나무 칫솔. ⓒ닥터노아

닥터노아의 대나무 칫솔. ⓒ닥터노아

40군데 거절 뒤 '첫 투자'를 유치하기까지

Q.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투자 유치를 받기 시작한 건가요?
네. 처음에는 투자자들이 저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대나무로 칫솔 만들어서 어떻게 플라스틱 칫솔을 이기냐고요. 아무도 투자를 안 했죠. 국내에서만 한 40군데에서 거절당했던 것 같아요. 그때 누가 그러더라고요. 미국은 친환경 제품 사업이 엄청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갔죠. 2019년 3월에 프라이머 사제 파트너스라는 곳에서 5억원을 투자받았어요. 간신히 위기를 넘겼죠. (그리고 1년 뒤인 2020년 3월에는 24억원을 추가로 투자받았고, 2021년 8월에는 시리즈 A로 30억원을 조달해, 지금까지 누적 59억원을 투자받았습니다.)

Q. 첫 투자를 받은 후에는 상황이 좀 잘 풀렸나요?
한 번도 투자를 쉽게 받은 적은 없습니다. 보통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기업은 AI·핀테크·블록체인·메타버스·바이오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인 것 같아요. 저희는 제조업이잖아요. 80년대에 뜨거웠던 비즈니스 모델이죠.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이 선호할 만한 산업 분야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엔 ESG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다 보니 예전보다는 호기심을 갖는 분도 계시죠.

저는 저희가 투자 유치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조건 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투자자 중에 저희 구성원 면면을 보고 ‘도대체 이런 친구들이 왜 다 이 회사에 와있냐?’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한 번은 투자 유치 미팅 중에 "어떻게 칫솔을 잘 만들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치과 의사라서요"라는 대답은 먹히지 않더라고요. 정답은 훌륭한 엔지니어를 비롯한 팀원을 갖추는 것이었어요. (중략)

Q. 대표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모든 플라스틱 칫솔 회사들이 대나무로 칫솔 만들게 하는 거예요. 그게 저희 팀의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소망이죠. 모든 플라스틱 칫솔 회사들이 더는 플라스틱 칫솔 만들 필요 없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회사라면 모두 플라스틱 폐기물 분담금을 내야 해요. 근데 이 플라스틱 폐기물 분담금이 점점 오르고 있어요. 지금은 킬로그램당 150원인데, 환경부에서는 이걸 앞으로 10배 올릴 거라고 해요. EU나 북미 시장은 더하죠. 앞으로 플라스틱 칫솔 제조원가는 점점 더 올라가고 대나무 칫솔 제조원가는 점점 더 내려갈 거예요.

고객들도 변했어요. 유럽이나 북미의 고객들은 이미 변했고, 우리나라도 변하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플라스틱이 싸고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사용했어요. 근데 지금은 플라스틱이 지구에 너무 큰 문제가 되어 버렸죠. 모두가 플라스틱의 대안 소재를 찾고 있어요. 우리는 대나무라는 지속가능한 소재를 플라스틱처럼 싸고 품질 좋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죠.

우리는 대나무 칫솔을 세상에서 가장 잘 파는 회사보다는,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우리가 대나무 칫솔 많이 파는 것보다, 기존 플라스틱 칫솔 회사들이 대나무로 칫솔을 만들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만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소셜임팩트를 극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환경문제 해결하는 '힙한' 브랜드” 4화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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