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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 터질게 터졌다…재건축 덮친 인플레, 공사비 날벼락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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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증액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공사비 증액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재건축 공사비 '태풍'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입니다.”

역대 최대 규모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를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업단(시공단)의 '치킨게임'에 대해 건설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울고 싶은 당사자가 시공단이고 뺨을 때린 쪽은 조합을 말한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급증하는 원가 부담에 울고 싶은데 조합이 기존 공사비 증액 무효를 요구하며 시공사 교체 강수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재건축 시장에 공사비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조합과 시공사 간 해묵은 줄다리기가 아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공사비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둔촌주공 공사비 증액 논란은 앞으로 닥칠 공사비 ‘폭탄’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시공단과 이전 조합이 2020년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비를 당초 2조6700억원에서 3조2300여억원으로 20%가 넘는 5600여억원 늘렸다. 조합원(6100여명)당 평균 1억원에 가까운 추가 공사비를 안았다. 현 조합이 공사비 증액 무효를 주장하지만 시공단은 한국부동산원의 검증까지 거친 정상적인 증액이라고 맞선다.

사실 오랫동안 재건축 시공사 선정의 과열·불법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공사비 관리가 엄격해졌다. 서울시는 ‘고무줄’ 공사비 논란을 없애기 위해 조합이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를 할 때 예정 공사비를 명시하게 했다. 예정 공사비를 초과하는 금액을 제시하는 업체는 탈락한다.

2019년부터 공사비 검증 제도도 도입됐다. 사업시행 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한 뒤 공사비가 5% 넘게 늘면 한국부동산원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조합원 20% 이상이 검증을 요구할 수도 있다.
증액 비율을 따질 때 물가상승률만큼은 제외한다. 그런데 물가상승분을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 소비자물가 지수가 아니라 건설공사비 지수가 기준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다.

공사비에 물가상승분 반영 

둔촌주공 시공 계약한 2016년 10월 이후 착공을 앞두고 공사비를 다시 산정한 2019년 9월까지 건설공사비가 13.2%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6%였다.

증액 금액 5600여억원 중 절반이 넘는 3500억원이 이런 물가상승분이다. 나머지 2100여억원은 당초 계획보다 늘어난 926가구 건축비 등이라는 게 시공단 해명이다. 관련 법령 개정으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면적이 건축면적 계산에서 빠지면서 그만큼 집을 더 지을 수 있었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기존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를 짓는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 사업'으로 꼽힌다. 현재 공정률이 52%다. 연합뉴스

둔촌주공 재건축은 기존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를 짓는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 사업'으로 꼽힌다. 현재 공정률이 52%다. 연합뉴스

업계는 증액한 3조2300억원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비싼 공사비가 아니라고 말한다. 건축연면적 3.3㎡당 500만원 정도다. 이는 거의 5년 전 수준이다. 강남에선 공사비가 3.3㎡당 600만원대 중반까지 올라갔다. 현재 시공사를 선정 중인 강남구 일원동 개포한신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가 3.3㎡당 660만원이다. 지난해 11월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의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 금액이 3.3㎡당 610만원이었다.

공사비로 본다면 둔촌주공을 강남 수준의 고급스러운 단지로 재건축하기 어려운 셈이다.

둔촌주공 시공단이 공사 중단이라는 배수진을 친 데는 착공 이후 실제로 들어가는 원가 급증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착공 이후엔 물가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공사비를 올릴 수 없는데 인플레이션 후폭풍이 건설 현장을 덮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건설공사비 지수가 1년 전보다 14% 올랐다. 이전 3년간 오를 게 한 해에 오른 것이다.

반포주공1단지 등 공사비 급등 '불똥'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건설 원가 급등 불똥은 착공을 앞둔 다른 재건축 단지들에 뛸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이 지체돼 착공이 늦어진 단지들의 타격이 크다.

강남 재건축 대어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5300여가구 건립)와 반포3주구(2000여가구 건립) 등의 착공이 많이 늦어졌다. 반포주공1단지가 당초 2019년 5월 착공 예정으로 2조6000억원에 시공사를 선정했다. 지금까지 사업이 늦어지면서 건설공사비 지수가 20% 정도 상승했다. 5000여억원이다. 조합원당 2억원 넘게 추가 부담해야 한다. 이제 이주를 마무리한 단계여서 올해 안에 착공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일부 조합원의 관리처분 무효 소송에서 조합이 이겨 다행히 재건축부담금을 피했는데 그사이 사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공사비 부담을 안게 됐다”고 말했다.

강북 뉴타운 ‘블루칩’으로 꼽히는 용산구 한남동 한남3구역 재개발도 공사비 폭탄이 예상된다. 2020년 시공사 선정 때 공사비가 3.3㎡당 595만원인 1조9000억원이었다. 여기도 현재까지 건설공사비 지구사 20%가량 올랐다. 업계는 앞으로 2~3년 뒤나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원가 상승 추세라면 공사비가 50% 정도 늘어날 수도 있다. 조합원당 2억5000만원이다.

2020년 시공사 선정 후 사업이 늦어지고 있는 용산구 한남동 한남3구역 재개발 현장. 착공 지연으로 공사비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연합뉴스

2020년 시공사 선정 후 사업이 늦어지고 있는 용산구 한남동 한남3구역 재개발 현장. 착공 지연으로 공사비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연합뉴스

공사비 역풍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엔 순풍이 될 수 있다. 공사비 부담을 줄이려면 사업을 서두르는 낫기 때문이다.

강남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일반분양 등은 나중에 해도 되지만 공사를 계속 미루다간 낭패 볼 수 있다”며 “무엇보다 착공이 급해졌다”고 말했다.

공공공사 물가연동제 

원가 급등에 따른 사업성 악화 우려에 건설사들은 재건축·재개발 수주를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지난 12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3구역 재개발 시공사 선정이 무산됐다. 지난달 현장설명회에 대형건설사 등이 참여했지만 뚜껑을 연 결과 입찰한 업체가 없었다. 우동3구역은 2900여가구를 건립할 계획이고 예상 공사비가 9200억원 정도(3.3㎡당 600만원)로 예상돼 부산 최대 재개발 사업지로 꼽힌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요즘처럼 공사 원가가 뛰는 마당에 손익을 따져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공공공사처럼 민간 공사에도 착공 후 물가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공공공사는 원자재가격 급등 등을 공사비에 반영할 수 있는 물가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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