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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0건...정호영 뒤치다꺼리 자료 37개 낸 복지 공무원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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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출근길에 입장문을 읽기 위해 안경을 쓰고 있다. 연합뉴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출근길에 입장문을 읽기 위해 안경을 쓰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기자의 촉: 후보자 사적문제까지 공무원이 해명?

보건복지부는 22일 오후 1시 14분 '병역 관련 재검증 보도 관련' 이란 제목의 보도설명자료를 냈다. 정호영 장관 후보자 아들의 2015년 병역 판정 관련 영상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반박하는 자료다. 지난 10일 정 후보자 지명 이후 37번째 내놓은 보도설명자료이다. 1시간 여전에는 2020년 대구 코로나 유행 때 정 후보자의 심야 법인카드 결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보도를 반박하는 자료를 냈다.

담당 부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준비단이다. 준비단에는 복지부 인사과·감사관실·기획조정실·대변인실 공무원이 대거 참여한다. 이들은 세종시 복지부 청사를 떠나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정 후보자 청문준비 사무실에 나와 있다. 국무총리실도 이달 3일 한덕수 후보자 지명 이후 32개의 보도설명자료를 쏟아냈다. 여기에도 적지 않은 총리실 공무원이 매달려 있다.

정 후보자는 주로 자녀의 경북대 의대 편입학이나 아들의 병역 관련 보도를, 한 후보자는 재산이나 로펌(김앤장) 고액 연봉, 아내의 전시회 등의 보도를 반박했다. 정책에 관한 부분은 없었다. 후보자 개인 문제였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도덕적 흠결을 캐는 식으로 흘러가고 정책은 뒷전이니 설명자료가 그리 따라갈 수밖에 없긴 하다. 복지부는 10일 이후 67건(사진 제외)의 보도자료를 냈는데, 이 중 정 후보자 관련 자료가 55%를 차지한다. 적지 않은 공무원이 복지 정책 대신 정 후보자에 매달려 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코로나19 브리핑을 하던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도 장관 후보자 변호 업무로 돌아섰다.

인사청문회법 제15조의2(공직 후보자에 대한 지원)에는 '국가기관은 이 법에 따른 공직 후보자에게 인사청문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최소한 지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최대한으로, 어떨 때는 과도할 정도로 지원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다. 복지부는 밤 10시 넘어서도 자료를 내고, 토·일요일도 쉴 틈이 없다. 20일에는 무려 8개의 자료를 쏟아냈다.

청문회준비단은 직업 공무원이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후보자의 미흡한 정책 분야를 보완하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자녀 입시나 병역 문제 뒤치다꺼리가 '최소한의 지원'에 들어갈까. 물론 이번만 그런 건 아니다. 2000년 공직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죽 그래왔다. 분명히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 후보자는 22일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불법적인 행위는 물론 없었고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떳떳하다"고 말했다. 이런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그의 말대로 불법적인 행위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니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

정 후보자가 못 보는 점이 있다. 자녀의 경북대 의대 편입이 법적으로 하자는 없을지 몰라도 다른 의과대학에 비춰보면 다른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자료에 따르면 2015~2020년 한시적으로 학사 편입이 허용됐을 때 10개 국립대 의대 교수 자녀 8명이 의대에 편입했다. 자녀 2명이 편입한 경우는 정 후보자가 유일하다.

게다가 경북대 의대 전임 교원 중 경북대 의대 출신이 80%에 달한다. 전남대(87%), 부산대(84.3%)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국민은 이런 강한 순혈주의가 '끼리끼리 정신'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10일 정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외과 전문의로 37년간 암 수술과 의료행정에 몸담았다"면서 "2020년 초 대구 코로나 창궐 시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며, 진료 공백이 없도록 의료체계의 틀을 잡은 분"이라고 말했다. 의료 행정, 특히 정 후보자의 대학병원 행정은 의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건강보험·의료체계·질병예방·1차의료·지역사회돌봄 등등 보건의료 영역은 한없이 넓다. 기초생보제나 긴급생활지원 등의 전통적인 복지 정책, 연금개혁, 저출산·고령화, 인구 등은 정 후보자와 더 거리가 멀다.

물론 이질적인 보건과 복지가 뒤섞인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에 모든 걸 아는 사람이 앉을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이 흔하지도 않다. 하지만 정 후보자의 이력을 보면 그의 전문성이 일부분에 국한돼 있는 듯하다. 게다가 지방소멸 지역이나 흉부외과·산부인과 등의 '소멸 위기 의사' 등의 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자녀 편입 논란의 상처를 안고서 장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지 의문이다.

윤 당선인 측에서 "정 후보자와 '40년 지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널리 인재를 구하는 건 철칙이다. 그런데 가까이서 구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작금의 상황은 윤 당선인이나 새 정권에도 결코 이로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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