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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푸틴과 김정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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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31면

최익재 정치부문 기자

최익재 정치부문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강력한 경제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좀처럼 전쟁을 끝낼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전쟁은 러시아가 안보 위협에 대한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서방이 이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을 막겠다는 것이다. 나토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완충지대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 푸틴 대통령의 전략이다. 그는 자신의 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국제질서 파괴를 개의치 않았다. 주권 국가를 불법적으로 침략해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만행에 세계인들은 경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푸틴 대통령과 무력 도발을 일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유사점이 적지 않다. 우선, 둘 다 1인 독재 체제를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은 1999년 대통령 권한 대행에 오른 이후 4년 임기의 대통령을 네 번째 맡고 있다. 중간에 총리를 지내 8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때도 실질적 최고 권력은 푸틴이 쥐고 있었다. 70세인 지금도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면서 종신 권력을 꿈꾸고 있다.

푸틴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다. [AP=연합뉴스]

푸틴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다. [AP=연합뉴스]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보장받은 종신 권력이다. 김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당과 군부 등 북한의 국가 시스템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런 독재자들은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안위가 곧 국가의 안전보장이라고 착각한다. 권력에 대한 위협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통치의 제1원칙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독재자들은 자신이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권력과 함께 무너지곤 했다. 2010~11년 아랍의 봄이 중동에 휘몰아칠 때 튀니지와 리비아 등의 절대 권력자들의 몰락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북한과 러시아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국제질서를 무시하면서 독자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은 반문명적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감행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금지한 유엔 결의를 수시로 위반하고 있다. 또 북한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비대칭 전략은 치명적이다. 이는 주변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대한 위협이다. 이처럼 러시아와 닮은꼴인 북한으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다.

돌이켜보면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최선은 러시아의 침략을 피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한 길은 크게 두 가지였다. 나토 가입을 포기하거나 러시아의 침략을 억지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자산의 보유다. 이 중 나토 가입 포기는 주권 행사를 스스로 제한하는 행위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선 불가능한 선택이다. 강력한 전략자산인 핵무기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됐다. 1994년 부다페스트 협정을 맺어 소련 붕괴로 남아 있던 핵무기는 모두 우크라이나 영토 밖으로 반출됐다. 결국 러시아의 침공을 막을 수단이 없는 탓에 전쟁에 휘말린  것이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남북 간의 무력 충돌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남한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다. 전쟁을 피하지 못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시급한 외교안보 과제는 한반도 평화 정착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대북 억지력만큼은 확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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