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 의지를 굽히지 않는 가운데, 방어전에 나선 국민의힘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민주당과의 힘겨루기에서 이길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당 분위기가 참담하지만은 않다. 겉으로는 “민주당을 막을 물리적 수단이 없다”는 탄식이 흘러나오지만, 내부에서는 “민주당의 폭주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상황은 오히려 호재”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날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을 법안심사소위가 열리기 전까지 국회 소회의실에서 대기하며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이날 탈당해 ‘검수완박 반대 입장문’으로 논란을 빚은 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 대신 안건조정위원회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한때 소회의실이 웅성거리기도 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꼼수까지 써가며 이번 주 내로 법사위를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오후 4시쯤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안건조정위 취지를 무력화하고 소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는 꼼수”라며 “박병석 국회의장은 민 의원을 다른 상임위로 보내고, 타 상임위의 민주당 의원을 법사위에 보임하라”고 촉구했다.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골자로 하는 검수완박 법안은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기 직전이다. 이후 법사위 전체회의, 안건조정위를 거쳐 다음 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다. 110석인 국민의힘이 저지하고 나섰지만, 172석 민주당에 맞설 카드가 없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서면 ‘회기 쪼개기’로 무력화시킨다는 전략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도 자동 종료되고 해당 법안이 다음 회기에 바로 상정되기 때문에, 4월 중에 임시국회를 먼저 끝내고 곧바로 하루짜리 임시국회를 다시 소집하면 검수완박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민주당이 2019년 말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 공수처법을 처리할 때 썼던 방법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전적으로 국민 여론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라며 “민주당이 앞뒤 안 가리고 강행 처리에 나서는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물론 변수가 없지는 않다. 법안 상정 권한을 가진 박병석 의장의 선택에 여야 이목이 쏠린다. 이날 박 의장이 해외 순방 일정을 보류하자 국민의힘 측에서는 “중재를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같다”(당 핵심 관계자)는 기대감도 흘러나왔다. 지난해 민주당이 ‘언론재갈법’을 밀어붙였을 때도 박 의장이 법안 상정을 거부하고 여야 중재에 나섰던 전례도 있다. 다만 박 의장이 민주당 출신인 만큼 국민의힘에서는 상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정치적 유불리와 상관없이 총력 저지에 나서겠다”(전주혜)고 결의를 다졌지만, 당 내부에서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독주가 부각되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반응도 꽤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임대차 3법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가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호되게 역풍을 맞지 않았나”라며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만족시킬 지는 몰라도, 대다수 중도층은 심판론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검수완박이 쟁점화되면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도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최측근인 한 후보자를 지명한 것을 두고 “협치가 실종됐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는데, 민주당 독주에 맞서는 ‘대응 카드’로 한 후보자 임명에 명분이 생긴다는 논리다. 익명을 원한 야권 관계자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당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검수완박 사태가 시선을 분산시키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