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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이스타젯 태국인 오너…'바지 대주주' 의혹 커졌다[탐사추적-타이이스타젯 의혹]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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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월 15일 낮, ‘섭씨 33도 맑음, 체감온도 41도’. 핸드폰에 뜬 방콕 날씨, 찌는 더위를 체감하면서 타이이스타젯 사무실을 찾아나섰다. 문재인 대통령 딸의 이주와 사위의 취업, 이상직 국회의원(타이이스타젯 의혹과 별건의 550억원 횡령 혐의로 수감 중)의 차명 소유 의혹, 수상한 돈의 흐름 등 의문의 해답은 타이이스타젯의 정체를 푸는 데 달렸다.

태국 투자청(BOI) 홈페이지에 등재된 타이이스타젯 주소를 따라갔다. 방콕 중심가 수쿰빗아속에 있는 지상 43층짜리 ‘GMM Grammy place’가 나타났다. GMM Grammy는 음악·미디어·영화 등 태국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우리나라의 에스엠·YG·JYP를 연상하면 된다고 한다. 1층 안내데스크에서 “타이이스타젯을 방문하려고 왔다”고 하니, “26층에 있다”며 별다른 확인 없이 출입증을 내줬다. ‘페이퍼컴퍼니’ ‘유령회사’라는 국내 일각의 주장과 달리 실체가 있는 회사였다.

 타이이스타젯 방콕 사무실 안내 표지판.

타이이스타젯 방콕 사무실 안내 표지판.

2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EASTAR JET’(이스타항공) 로고와 ‘Thai EASTAR JET’ 로고가 크게 쓰인 평범한 사무실 입구가 보였다. 문은 잠겨 있었다. 사무실 안에 불은 꺼져 어두웠다. 박석호(56·이하 존칭 생략) 대표는 물론 직원 한 명 보이지 않고 컴퓨터가 듬성듬성 보일 뿐 적막했다. 옆 사무실 직원에게 물었더니, “여직원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끔 나오는 것밖에는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빌딩 안내판에 적혀 있는 방콕 사무실 일반 전화번호로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타이이스타젯은 폐업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는 존재했다. 빌딩 관리사무소에 물어봤다. 사무실 문을 걸어 잠갔지만 임대료도 꼬박꼬박 냈다. 사무실은 350㎡(105평) 크기로 월 26만2500바트(약 950여만원)의 월세를 내고 있다. 사무실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연간 1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출한다는 얘기다. 아무런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회사가 임대료를 낭비하면서 서류상으로 존속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현재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태국인 '바지 대주주'…차명 회사 가능성

3월 15일 방문한 타이이스타젯 방콕 사무실. 임대료를 내고 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고대훈 기자

3월 15일 방문한 타이이스타젯 방콕 사무실. 임대료를 내고 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고대훈 기자

타이이스타젯의 정체를 벗기기 위해 박석호와 함께 ‘ChatchaiJaipitak’(찹차이짜이피탁)이라는 태국인을 주목했다. 태국 상무부 사업개발국(DBD)에 등재된 타이이스타젯의 법인등기부 이사 명단에는 ChatchaiJaipitak이라는 영어로 쓴 태국인 이름이 올라있다. 71억원 자본금의 타이이스타젯의 법인 지분은 ChatchaiJaipitak 등 태국인 2명이 99.98%를, 한국인 1명(박석호)이 0.02%를 각각 보유했다. ChatchaiJaipitak이 누구인지 안다면 타이이스타젯의 실소유주를 밝혀낼 수 있다.

서류를 검토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스타젯에어서비스’라는 이스타항공의 태국 티켓총판회사(GSA·General Sales Agent)가 있었다. 이 티켓총판의 등기이사에는 대표 박석호에 이어 ‘นายฉัตรชัย ใจพิทักษ์’라고 쓰인 태국인이 등장한다. 현지 안내를 도와주던 태국인에게 “어떤 이름이냐”고 무심코 물었더니 “영어로 ChatchaiJaipitak”이라고 설명했다. ChatchaiJaipitak은 박석호의 티켓총판에 같이 일한 직원이었던 것이다.

타이이스타젯에서 훈련국장으로 근무했던 일본인 구마다 아키라(54)가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찹차이'를 언급한 적이 있다. 구마다는 “(대통령 사위는) 박석호 대표와 또 다른 한국인 간부 및 '찹차이'란 이름의 태국인 경영국장(Managing director) 등 딱 세 명하고만 대화했다”고 전했다(중앙일보 2021년 8월 25일자 "대통령 사위, 타이이스타 고위직 근무…이름은 제임스"). 찹차이는 ChatchaiJaipitak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티켓총판과 타이이스타젯에서 박석호 밑에서 일한 찹차이가 70억원대 타이이스타젯의 대주주로 둔갑한 것이다.

태국 기업인 명부 등을 뒤지며 ChatchaiJaipitak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태국에서 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인 교민 H씨(38)는 설명했다. “태국 법인은 반드시 태국인이 51% 이상의 지분을 가져야 한다. 직원의 이름을 빌려 바지 대주주로 만들고 실소유는 한국인이 맡는 게 태국에서 사업하는 관행”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그렇게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타이이스타-이스타젯에어서비스(티켓총판)의 법인 정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타이이스타-이스타젯에어서비스(티켓총판)의 법인 정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결국 ChatchaiJaipitak은 명의만 빌려준 ‘바지 주주’이고 타이이스타젯의 실소유주는 따로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박석호도, 찹차이도 아닌 제3의 인물이다. 지금까지 나온 정황과 증언 및 자료는 타이이스타젯의 설립 자금을 실질적으로 댄 이스타항공과 이스타항공을 지배했던 이상직 의원을 지목한다. 이스타항공은 이스타젯에어서비스의 티켓 판매대금 71억원을 외상으로 처리해 우회적으로 타이이스타젯을 세웠다는 의심을 받는다. 사실일 경우, 해외 비자금 창구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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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사위 채용에 제3의 인물 입김 작용 의혹

타이이스타젯이 누구의 것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대통령 사위가 태국의 저비용항공에서 일하게 된 경위와 법적 책임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차명 소유 정황은 여러 징후에서 포착된다.

첫째, 박석호는 “대통령 사위 서모(42)씨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모르고 채용했다”고 한 지인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이 지인은 “공항 일을 너무 모르고 한심해서 방콕 공항에 내보내 일을 배우게 했을 정도였다”며 “그즈음 대통령의 사위라는 사실을 어딘가로부터 듣고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 전언이 사실이라면, 회사 대표인 박석호는 신분도 모른 채 누군가의 청탁이나 압력을 받고 대통령 사위를 채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사위는 ’제임스‘라고 불리며 전무이사 근무했다. 타이이스타젯의 실소유주만 할 수 있는 권한이다. 서울에서 만난 이스타항공의 전직 간부 K씨는 “박석호씨가 2016년 8~9월 방콕 거점으로 항공사를 만든다고 이상직씨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둘째, 방콕 사무실에서 확인한 것처럼 타이이스타젯은 이스타항공의 사명과 기업 로고를 똑같이 쓰고 있었다. 상표권 사용료나 로열티도 안 받았고 한다. “이스타항공 내부에서는 기획팀 주도 아래 부서별로 한두 명씩 겸직으로 타이이스타젯 업무를 했다”는 이스타항공 전 간부 A씨의 증언도 있었다. 항공기 전문 웹사이트인 플레인스파터(Planespotters.net), 글로벌 항공컨설팅 전문업체 CAPA(centreforaviation.com) 등 항공 관련 조직에서는 타이이스타젯을 태국 국적의 항공사지만 한국의 이스타항공 자회사라고 명시한다.

타이이스타젯 방콕 사무실이 있는 건물 입구.

타이이스타젯 방콕 사무실이 있는 건물 입구.

셋째, 태국 현지 법인 등기부에 따르면, 타이이스타젯은 2017년 2월 20일 자본금 2억 바트(약 71억원)로 설립됐다. 2억 바트의 출처는 사실상 이스타항공이다. 이스타항공이 티켓총판회사 이스타젯에어서비스에서 항공권 판매대금을 받지 않고 타이이스타젯 설립 자금으로 불법 전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회사에 들어올 돈을 해외로 빼돌리는 행위는 외환관리법 위반이다. 이스타항공의 수입에 손실을 끼쳤으니 배임과 횡령 혐의가 적용된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박이삼 위원장은 “이스타항공은 이스타젯에어서비스가 약 71억원의 외상 채권을 갚지 않고 타이이스타젯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해 5월 이상직과 함께 박석호를 배임·횡령 등 혐의로 전주지검에 고발했다.

넷째, 이스타항공은 2019년 타이이스타젯이 항공기 B737-800 1대 임차에 따른 지급보증을 섰다. 보증 규모는 3100만 달러(약 380억원). 이상직은 “이스타항공과 타이이스타젯은 서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회사”라고 했다. ‘관계없는 회사’에 380억원의 보증을 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허름한 태국 항공사에 로고와 이름을 쓰도록 허용하고, 71억원을 외상으로 주고, 거액의 지급보증을 서는 일은 실무진에서 결정할 수 없다. 최고 실소유주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스타항공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이상직이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 "취업에 특혜나 불법 없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 사위의) 취업에 특혜나 불법은 없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상직 의원도 서씨 특혜 취업 의혹을 부인해 왔다. 타이이스타젯이 이상직의 소유가 아니니 특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반대로 모종의 관계가 있다면 “(대통령에 대한) 대가성 뇌물”(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래서 타이이스타젯의 실소유주 의혹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다시 박석호로 초점이 모인다. 박석호는 티켓총판 이스타젯에어서비스의 대표와 타이이스타젯의 대표였다. 이스타젯에어서비스-이스타항공-타이이스타젯으로 연결되는 돈의 경로와 사용차를 알고 있다. 형식적으로 대통령 사위의 고용자다. 그의 결정적인 증언 한마디면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잠적한 박석호를 꼭 만나야 한다. 〈계속〉

방콕=고대훈 기자, 서울=여성국 기자

〈3회. 사라진 60억원대 판매관리비는 누구를 위해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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