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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 “그 많은 사건 누가 다 처리하나” 검찰수사권 박탈 소식에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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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임들 수사 ‘뽕’ 취해 있을 때 앉혀놓고, 베테랑들은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 타 부서로 다 도망가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게시된 한 글이 경찰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자신을 현직 경찰이라 소개한 작성자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누구보다도 반대하는 건 경찰들”이라며 “‘수사 탈출은 지능 순’이란 말을 달고 사는 게 지금 수사부서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수사 업무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이 아직 깨지지 않은 신입 경찰관들만 남으려 한다고 자조한 것이다.

그가 전한 ‘수사부서의 현실’은 수사관 1명당 사건 50~200건을 맡아 업무가 과중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순번 정해서 탈출할 정도로 수사 기피가 심각해 현재 경찰 수사 조직은 붕괴되기 직전”이라고 주장했다. 작성자는 “마치 수사에 자부심 있는 사우님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어 미리 사과드린다”며 “제 개인과 일부의 의견이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며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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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선의 팀장·과장 등 여러 경찰관은 이 글에 공감을 표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검수완박까지 더해지게 되면 현장의 업무 부담 무게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한 팀장급 경찰관은 “검수완박이 우리에게 주는 건 매일매일의 야근뿐”이라고 했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경정은 “경제팀 등 수사부서 기피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사건은 갈수록 쌓여가고, 일은 많은데 사람은 없다. 검수완박까지 이뤄지면 그 많은 일은 누가 맡으려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경찰은 지난해 약 2700명의 수사인력 보강을 행정안전부 등에 요청했지만 440여 명이 증원된 상황이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에선 “현실 세상은 단순 폭행·절도같이 간단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고 짚는다. 고도의 사기범죄, 경제범죄 등 각종 법률이 얽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복잡한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선의 간부급 경찰은 “일례로 공정거래 사건은 검찰이 그간 수사를 해왔고, 그만큼 전문성도 있다”며 “갑자기 경찰에 ‘수사하라’고 하면 현장으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부 의견 대립도 있다. 경찰의 노조 격인 전국경찰직장협의회(직협)는 회장단 명의로 “5만3000명의 (직협) 회원들은 수사·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찬성한다”며 성명을 냈다. 반면 폴넷 등에선 “(직협이) 동의나 합의 없이 경찰 전체 입장인 양 쉽고, 성급하고, 간략하고, 가볍게 (입장을) 밝히는 데 우려를 표한다”는 글들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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