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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지키려 만든 방패, 정호영도 지킨다…檢수사권 조정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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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경북대 의대 편입 특혜 의혹과 관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여권 인사들이 검찰이 수사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검찰이 2019년 조국 전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 수사를 강도 높게 벌인 만큼 정 후보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로 수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조 전 장관 가족 수사 때와 달리 현 여권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2021년부터 6대 범죄로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이는 여당이 정 후보자 사안에 대해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건 자가당착이란 지적도 나온다.

'아빠 찬스' 의혹을 받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아빠 찬스' 의혹을 받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與, 조국 수사 빗대 “같은 잣대 적용해야”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친여 성향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오는 20일 서울중앙지검에 정 후보자를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장을 제출한다.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 부원장‧원장 시절에 그의 두 자녀가 경북대 의대로 학사 편입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 후보자가 개입해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여권에서도 수사 필요성을 연일 주장한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5년 동안 공정이 사라지고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의 지점도 있다”며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조국 전 장관 때처럼”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전날 회의에서 “조 전 장관 때 같았으면 (검찰이) 지금쯤 열 곳은 압수수색을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 검찰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다시 정권의 하수인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 선언을 한 송영길 전 대표도 이날 라디오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국 장관 부부와 그 가족에게 했던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검찰이 조 전 장관 가족의 입시비리 의혹 관련 등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걸 빗댄 것이다. 2019년 8월 서울중앙지검은 당시 장관 후보자 신분이던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의혹과 관련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과 부산의료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고려대, 단국대, 공주대 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입시비리 의혹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1일 조 전 장관의 딸 조민 관련 입시비리 혐의 등을 받고 있던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정 교수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입시비리 의혹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1일 조 전 장관의 딸 조민 관련 입시비리 혐의 등을 받고 있던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정 교수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뉴스1

6대 범죄 제한된 檢…“정호영 의혹, 수사 권한 밖에 있어”

그러나 정 후보자에 대해서는 조 전 장관 수사 때와 달리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의 수사권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현재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한해서만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의혹이 제기된 당시에 정 후보자는 공직자로 분류되는 국립대학(경북대) 병원장에 재직했었다.

우선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6대 범죄를 혐의별로 제한한 대통령령인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에서 자녀 편입학 특혜 관련 공무집행방해나 업무방해 등은 검찰의 수사 대상 범죄에서 뺐다. 시민단체들이 전날 의대 편입 의혹과 함께 경찰에 고발한 정 후보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과 관련된 병역법 위반 혐의 역시 마찬가지다.

현직 검찰 간부도 이에 “고발장 내용을 살펴봐야겠지만 현재 정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내용은 검찰이 가진 수사 권한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이 고발장을 접수하더라도 사건을 경찰로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 정부와 여당이 ‘조국 사태’ 이후 재발을 막기 위해 밀어붙인 검·경 수사권 조정 탓에 정 후보자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미 경찰에는 정 후보자 관련 고발장이 접수돼 있다. 개혁과 전환을 위한 촛불행동연대 등 5개 시민단체는 정 후보자 등을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지난 18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경찰이 정 후보자 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마친 뒤 사건을 송치하더라도 검찰이 보완수사 필요성을 검토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6대 범죄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직접 수사를 못하고 원칙적으로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만 할 수 있다.

민주당이 4월 국회에서 ‘검수완박’ 강행 처리를 추진하면서 정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이 목표한 대로 관련 법안이 다음 달 3일 공포되면, 3개월 후인 8월 초부터 적용된다. 그러면 검찰이 쥐고 있던 사건을 8월 초 이전에 모두 경찰에 넘겨야 한다. 검찰이 정 후보자 관련 수사를 개시하더라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경찰로 사건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전날 검찰만을 거론해 비판하던 박지현 위원장은 이날 “검찰이든 경찰이든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같은 잣대를 가지고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경찰은 오늘이라도 즉각 수사에 착수해 한치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하고 신속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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