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 ICBM 쏘기 전, 중·러 KADIZ 무단진입…軍은 감췄다

중앙일보

입력 2022.04.19 05:00

업데이트 2022.04.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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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했던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군용기가 동해 상공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으로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전날인 지난달 23일엔 중국의 군용기가 동해 KADIZ에 사전통보 없이 들어왔다. 북한이 ICBM 시험발사를 앞두고 중국ㆍ러시아와 사전 교감을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군 당국은 중국ㆍ러시아의 KADIZ 무단 진입에 대해 지금까지 함구해 왔다.

전날엔 中 군용기 들어와
군은 양국 무단진입 미공개

18일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오전 11시쯤 동해 KADIZ에서 러시아의 정찰기 1대가 전투기 1대의 호위를 받으며 동해 KADIZ로 진입했다.

군 경고방송 후 전투기 띄워 

러시아 군용기들은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KADIZ를 휘젓고 다닌 뒤 나갔다. 군 당국은 러시아 군용기에 대해 경고방송을 5번 이상 내보낸 뒤 공군의 전투기를 긴급히 띄워 대응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러시아가 응답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난달 24일, 러시아 정찰기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5일 동해에서 일본 항공자위대에 식별된 IL-20 정찰기의 모습. 사진 일본 통합막료감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난달 24일, 러시아 정찰기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5일 동해에서 일본 항공자위대에 식별된 IL-20 정찰기의 모습. 사진 일본 통합막료감부

같은 날 오후 2시 34분쯤 북한은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ICBM을 시험발사했다. 전날인 23일엔 중국 군용기가 동해 KADIZ에 무단진입했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공으로 인정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의 항공기가 타국 방공식별구역에 들어가기 전 미리 알려주는 게 국제 관례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같은 국제관례를 무시했다.

중·러 무단 진입, 군은 계속 함구 

합동참모본부는 이날까지 중국ㆍ러시아의 KADIZ 무단진입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합참은 “KADIZ 무단진입이 대규모로 이뤄지거나, 중ㆍ러가 연합하거나, 또는 영공침범으로 이어질 경우만 관련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고 말했다고 신원식 의원이 전했다.

그러나 일본 통합막료감부(한국의 합참에 해당)는 지난달 25일 트위터에서 전날(지난달 24일) 동해ㆍ동중국해에서 “영공 침범 우려가 있어서 항공자위대 서부항공방면대 등 전투기가 긴급 발진해 대응했다”고 밝혔다. 트위터로 지난달 23일에도 동해ㆍ오호츠크해ㆍ동중국해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출격했다고 알렸다.

다만 어떤 국가가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에 들어왔는지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일본 통합막료감부(합참에 해당)는 지난달 25일 트위터를 통해 전날 동해 및 동중국해에서 "영공 침범 우려가 있어서 항공자위대 서부항공방면대 등의 전투기가 긴급 발진해 대응했다"고 밝혔다. 사진 일본 통합막료감부 트위터 캡처

일본 통합막료감부(합참에 해당)는 지난달 25일 트위터를 통해 전날 동해 및 동중국해에서 "영공 침범 우려가 있어서 항공자위대 서부항공방면대 등의 전투기가 긴급 발진해 대응했다"고 밝혔다. 사진 일본 통합막료감부 트위터 캡처

신 의원은 “지금까지 KADIZ 무단진입에 대해 공개하는 게 원칙인데 이제 와서 숨기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안보공백을 초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군 당국이 정권 말기 기강이 풀어진 것인지 엄중한 사안을 은폐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은 북한이 지난 16일 전술핵용 신형 미사일을 발사했던 사실을 함구하다가 다음날 북한이 발표한 뒤에야 이를 공개했다. 그런데 앞서 지난달 북한의 ICBM 발사에 맞춰 러시아·중국 군용기가 동해 KADIZ를 무단진입했던 사실은 아직까지 미공개하고 있다.

ICBM 발사, 북·중·러 합 맞췄나  

일각에선 북한의 ICBM 발사 이전에 중국ㆍ러시아 군용기가 KADIZ에 무단진입한 것을 놓고 세 나라가 미리 합을 맞췄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ICBM 시험발사 후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ㆍ러시아는 한목소리로 대북 제재 강화에 반대했다. 북ㆍ중ㆍ러 삼각 연대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의 ICBM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도입 명분을 준다고 봐 탐탐치 않게 여겼는데, 이런 입장과 달리 북한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로선 북한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을 상대로 도발을 계속 걸어야 유럽(우크라이나)에 신경 쓸 여력이 줄어든다는 이점이 있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발사한 미사일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며 관련 사진과 영상을 이튿날 공개했다. 뉴스1

북한은 지난달 24일 발사한 미사일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며 관련 사진과 영상을 이튿날 공개했다. 뉴스1

러 정찰기, 한·미 동향 파악한 듯

실제로 지난달 23~24일 동북아에선 북·중·러와 한·미·일간 군사적 기싸움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정찰기는 24일 동해 KADIZ 안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동향에 대비하는 한ㆍ미의 움직임을 파악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같은 날 러시아 구축함이 대한해협 동수로(쓰시마해협)를 지나 동중국해 쪽으로 항해하자, 일본은 군함과 해상초계기로 이를 감시했다.

미국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지 않기 위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하면 한·미가 즉각 연합 미사일 타격훈련을 벌이기로 했던 당초 양국 합의와 달리 지난달 24일 북한의 발사 후 미국은 빠졌다. 당시 한국군 단독으로 합동 지·해·공 미사일 발사 훈련을 했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미국은 러시아를 자극할까 봐 미사일 발사를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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