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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끝나면 큰 장 선다" 들썩…불황 먹고 사는 시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2020년 3월 대구시 북구 제3산업단지관리공단 거리에 공장매매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걸렸다. 관리공단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단 내 대부분 공장에 신규발주는 나오지 않고 기존의 발주도 취소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2020년 3월 대구시 북구 제3산업단지관리공단 거리에 공장매매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걸렸다. 관리공단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단 내 대부분 공장에 신규발주는 나오지 않고 기존의 발주도 취소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불황을 먹고 사는’ 부실채권(NPL) 시장이 최근 들썩인다. 시장 공략에 나선 금융사가 늘고 기존 업체도 자금을 수혈하거나 해당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 지원이 종료되고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 NPL 물량이 쏟아지는 ‘큰 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서다.

NPL은 돈을 빌리는 차주(자영업자·기업 포함)가 은행에서 주택이나 주유소, 공장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가 원금이나 이자를 3개월 이상 갚지 못한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분기마다 NPL을 정리해 건전성 지표를 관리한다. 이때 은행의 부실채권을 싸게 사들여 경매 등으로 수익을 내는 곳이 NPL 투자 전문회사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의 NPL 투자(미상환 원금 잔액) 규모는 3조원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4조4000억원)보다 32% 쪼그라들었다. 그동안 저금리와 정부의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조치로 차주의 빚 상환 부담이 완화됐기 때문이다.

부실채권(NPL) 시장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부실채권(NPL) 시장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시장 공략 나선 NPL 전업사

하지만 올해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 1월 우리금융그룹이 NPL 전문 자회사(우리금융F&I)를 세워 NPL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게 가장 눈에 띈다. 지난 2014년 우리금융 민영화 과정에서 NPL 자회사(현 대신F&I)를 대신증권에 판 지 8년 만의 재도전이다. 우리금융F&I 설립은 코로나19이후 NPL 시장 규모 확대를 예상한 전략적 결정이었다는 게 우리금융 측 설명이다.

하나금융그룹의 자회사인 하나F&I도 최근 담보자산(부실채권)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기업 구조조정 투자에 나서는 등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 자본금 200억원으로 2020년 말 문을 연 키움증권의 NPL 전업사인 키움F&I는 1년 새 증자로 자본금을 1000억원 수준으로 늘렸다.

투자 규모(미상환 원금 잔액 기준)는 지난해 1조1800억원 상당을 투자한 연합자산관리공사(유암코)가 가장 크고, 뒤를 이어 하나F&I(9300억원), 키움F&I(3900억원), 대신F&I(3100억원) 등 순이다.

“유예조치 끝나면 물량 쏟아진다”

이들 업체가 NPL 사업을 강화하는 데는 하반기 부실채권 물량이 늘 것으로 예상해서다. 오는 9월이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지원한 대출 만기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끝난다.

2020년 4월부터 시행된 유예 조치가 네 차례 미뤄지면서 2년 반 동안 드러나지 않은 ‘깜깜이 부실’이 한 번에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해당 대출 잔액은 133조4000억원(70만4000여건)에 이른다.

그뿐이 아니다. 올해 금리 인상기로 접어들며 치솟는 대출 금리에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부터 9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린 영향이 크다. 한은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2월 기준 연 3.88%로 2013년 3월(3.97%) 이후 8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다.

신용등급이 낮은 개인사업자의 이자율도 크게 뛰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기준 지난달 7등급 이하(7~10등급) 저신용자의 물적담보대출 평균금리는 5.48%로 1년 전(4.9%)보다 0.58%포인트 올랐다.

유암코 관계자는 “대출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5개월 뒤 대출 만기 유예조치가 끝나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기업(자영업자 포함)이 늘 수 있다”며 “(은행은) 채권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시장에 팔기 때문에 연말부터 부실 매물이 나올 수 있다”고 봤다.

원자재값 뛰자 공장 경매 인기

이자 못갚는 한계기업 증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자 못갚는 한계기업 증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또 원자재값이 뛰면서 경매로 나온 공장 몸값이 올랐다는 점도 NPL업체엔 호재다. 시멘트·철근 등 건설 원자재 값이 급등하자 공장을 새로 짓기보다 경매시장에서 공장을 찾는 수요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NPL 업체 관계자는 “보유한 담보 부동산(부실채권)의 40~50%가 공장이나 상가인데 공장 경매가 인기를 끌면서 채권 원금 회수가 빨라졌다”고 말했다.

부실채권 물량 증가는 국내 경제엔 시한폭탄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돈(영업이익)을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늘면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외부 회계감사 대상 기업 중 한계기업 비율은 2020년 15.3%(3465곳)로 1년 전보다 0.5%포인트 증가했다. 2010년 이후 최고치다.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의 여파 속 숨은 부실위험 기업에 대한 선제적 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 관련 지원이 끝나면 이자를 못 갚는 한계기업이 한 번에 늘 수 있다”며 “(은행은) 일단 매출 회복으로 영업이익이 늘 기업과 회생 불가능한 업체를 분류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깜깜이 부실채권 규모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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