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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국가난제 해결책 없어…‘최선의 차선책’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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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토대이자 역량으로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에 대한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홍성욱 서울대 대학원 과학학과장, 성창모 국가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 단장,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우상조 기자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토대이자 역량으로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에 대한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홍성욱 서울대 대학원 과학학과장, 성창모 국가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 단장,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우상조 기자

공동체의 미래를 ‘나의 일’로 받아들이는 공감력과 사회구성원 간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소통·토론 문화가 ‘국가난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라는 제언이 나왔다.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열린 ‘NEXT 과학기술과 사회소통 방향 모색’ 주제의 전문가 좌담회에서다.

이날 좌담회에는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과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홍성욱 서울대 대학원 과학학과장, 성창모 국가과학난제 도전협력지원단 단장이 참여했다. 진행은 최은경 중앙일보 기자가 맡았다. 다음은 주요 토론 내용. 존칭 생략.

Q. 국가난제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하태정 STEPI 선임연구위원이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하태정 STEPI 선임연구위원이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하태정=단순히 복잡하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개입과 노력이 요구되고, (정부의) 역할이 기대되는 문제가 국가난제다. 국민도, 이해 당사자도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문제다.

성창모=조금 깊이 들어가면 ‘과학난제’를 예로 들 수 있다. 과학난제를 국가 차원에서 처음 살피기 시작한 게 2001년 영국이다. 과학·공학 관점에서 국가난제를 바라본 것인데, 여기에는 사회학·인문학적 연계가 필요하다.

홍성욱=시민의 집단지성도 필요하다. 가령 최근 심각한 이슈로 떠오른 저출산과 높은 자살률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Q. 구체적으로 사안을 꼽는다면. 

성창모 국가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 단장이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성창모 국가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 단장이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성창모=탄소중립을 가장 큰 난제로 보고 있다. 최근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들고,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세워 대응하고 있지만 정교하게 예측하고 기준을 만드는 부분은 부족하다.

홍성욱=가장 큰 난제는 인구 감소다. 합계 출산율 0.84, 서울 출산율 0.67이라는 수치가 현실을 말해준다. 낮은 출산율의 배경에는 젊은 세대의 비혼 문화가 있고, 그 아래에는 일자리 문제로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리는 문제가 있다. 이는 남녀 갈등, 세대 갈등을 거치면서 다시 출산율을 낮추는 악순환을 야기한다.

조율래=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지역 소멸, 인구구조 변화뿐 아니라,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식량 안보, 국방 이슈도 부각되고 있다. 대부분의 난제가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과 무관하지 않으며, 해결방안 역시 과학기술적 해법에 기대를 걸고 있다.

Q. 하지만 경우에 따라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잡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렇게 난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홍성욱 서울대 대학원 과학학과장이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홍성욱 서울대 대학원 과학학과장이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하태정=우리 사회가 상당히 복잡해졌고, 이해 당사자도 다양하다. 그런데 ‘진단’이 명확하지 않아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국가난제를 경제‧사회 시스템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과학기술적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조율래=난제에 완전한 해결책은 없다. ‘최선의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데, 일부의 손해는 불가피하다. 의미 있는 견해를 주고받으며 객관성과 전문성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견해가 아닌 일방적인 주장이 난무하다 보니 국가난제 해결은 멀어지는 측면이 있다.

홍성욱=난제는 여러 사회·기술적 문제가 결합해 생긴다. 어떤 게 원인이고, 어떤 게 결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난제를 바라보는 사회과학적인 입장과 공학기술적인 입장 차이도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Q. 그러면 어떻게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나.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 ‘국가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문화의 역할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성창모=2019년 TED에서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지원 받았다. 모두 1500개 정도 아이디어가 제안돼 7개가 선정됐고, 문제 해결에 5000억원이 모였다. 섬나라에 플라스틱이 쌓이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한 지원자의 아이디어가 채택돼 수백만 달러를 가져갔다. 과학적인 해결 방법이 있다면 시민들이 지원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문화의 확산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는 2013년부터 팬데믹에 대한 준비를 했다. 이즈음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모더나를 지원했다. 지속 가능성을 더하려면 DARPA 같은 기관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홍성욱=지구 온도가 섭씨 2도 오르면 ‘그게 무슨 문제냐’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있을 수 있다. 관점을 바꿔, 지구 온도가 오르는 것이 체온 2도가 오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진다. 시민사회에서 국가난제를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내 가족, 후속 세대의 생존권 위협으로 여기고 움직일 수 있다. 시민 공감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능한 커뮤니케이터들이 국가난제를 내 일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율래=과학기술 혁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우리의 사회문화적 인식은 많이 뒤처져 있다. 과학기술‧디지털 문해력과 같은 기초소양을 토대로, 검증 가능성에 기초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와 토론 연습이 필요하다.

하태정=‘진·소·정·리’로 요약할 수 있다. 전문가의 진단과 시민사회와 소통, 범부처적 정책 간 연계,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산업계의 역할도 있다. 미국의 랜드연구소 같은 싱크탱크는 기업으로부터 상당한 재정 지원을 받는다.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춰 사회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이유다.

Q. 난제 해결은 어디까지 와 있고, 무엇이 필요한가.
하태정=현재는 난제 원인에 대한 진단과 시민과의 소통의 중간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난제에 대한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있어야 기업과 정부, 지방자치단체, 전문가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책임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다.

성창모=미국 캘리포니아, 호주 등에서 자연 발화로 발생하는 산불 피해는 사실상 예측이 가능하다.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라면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선제적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뤄지면 예방할 수 있는 일도 있는데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홍성욱=교육이나 대학의 역할도 필요하다. 기업도 ESG(친환경·사회적 가치·지배구조 개선) 경영을 강조하는데 대학은 여전히 학제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21세기를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시민에게 필요한 소양을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조율래=국가난제는 지금의 과학기술로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 다만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을 합리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초·중·고 학생의 기초소양 교육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것도 필요하다. 과학기술인들이 대중과의 소통에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할 때다. 과학기술문화 미래전략보고서를 통해 ‘과학이 일상이 되는 시대에, 시민과 사회의 역량으로서 과학기술문화’를 강조했다. 국가난제 해결 역량을 키우는 ‘사회적 인프라’로서 과학기술문화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협찬 : 한국과학창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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