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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때린 이복현 검사 사의 "文대통령 입장 밝혀달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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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수 검찰총장을 향해 "껍질에 목을 넣는 거북이마냥,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는 타조마냥 사라져버리시는 분들을 조직을 이끄는 선배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직격한 이복현 서울북부지검 형사제2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 부장은 검찰에겐 공소와 공소유지 기능만을 남겨두고 모든 수사권을 경찰에 주는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겨냥해 "경찰이 지상전에 능한 육군, 해병대라면 검찰은 F-16을 모는 공군 같은 기능"이라고 비판했다.

이복현 서울북부지검 형사제2부장은 13일 오전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e-pros)에 '사직인사'라는 글을 올려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으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사의를 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나온 검찰 내 첫 사표다. 이 부장은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며 자신이 과거 직접 수사했던 사건을 언급했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불법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과 전·현직 삼성 임원 등 총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1년9개월 만이다. 2020.9.1/뉴스1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불법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과 전·현직 삼성 임원 등 총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1년9개월 만이다. 2020.9.1/뉴스1

2006년 론스타 사건, 2010년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2017년 삼성그룹 노조 파괴 사건 등이다. 그는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서 손을 떼기로 하고, 기업이 부당하게 오너 일가를 지원하는 잘못된 관행이 줄어들고, 대기업이 정당한 노조 활동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노동조합이 최초로 설립되고 한 것은 수사 때문 만에 의한 것은 아니고 사회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합쳐져서 된 것이지만 적어도 위 수사들이 없었다면 그런 개선 결과가 쉽게 도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은 "경찰이 해도 잘했을 수 있었다구요? 네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국정원 사건의 경우 원래 경찰에서 수사가 시작돼 검찰이 여러차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를 했음에도 실체적 진실 발견이 부족해 결국 검찰에 송치된 이후의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진 사안"이라며 "삼성그룹 노조파괴 공작 역시 여러 차례 근로자들과 시민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경찰과 노동청에 민원을 넣는 등 의견표명이 있었으나 검찰에서 수사가 있기 전까지는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었고, 삼성은 이를 철저히 부인했다"고 과거 경찰의 실책을 짚었다.

그는 이어 "경찰도 유능한 인재들로 구성돼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서로 특장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지상전에 능한 육군, 해병대라면 검찰은 F-16을 모는 공군 같은 기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슨 이유인지 공군 파일럿이 미덥지 못하다고, 수십년간 거액을 들여 양성한 파일럿을 다 내보내고, 지상전 전문요원인 보병을 새로 교육시켜 나라를 지켜보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 입법을 비판했다.

지난해 초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법안이 시행된 뒤 수사에 난항이 생긴 점도 지적했다. 이 부장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부여된 이후 벌써 1년여간 시행해보면서 사건처리가 급격히 지연되고 그 과정에서 증거가 사라져 실체발견이 곤란해져서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경험한 것은 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국정농단' 수사 특검 사무실에 출근 중인 이복현 검사 [중앙포토]

'국정농단' 수사 특검 사무실에 출근 중인 이복현 검사 [중앙포토]

그는 "대통령께서는 검수완박 정책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지 알려주셨으면 한다"고도 말했다. "일국의 사법제도를 통째로 바꾸어놓을 만한 정책 시도에 대해 대통령제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께서 입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이달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기로 했는데도 청와대에선 이와 관련해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장의 사직인사엔 검찰 선후배들의 만류 댓글이 이어졌다. 박영진 의정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은 "저는 이 사직 인사에는 아쉬움이나 행복의 기원 같은 댓글을 쓰기도, 동의하기도 어렵다"고 댓글을 달았다. 박 부장은 "이 부장님 같은 분들이 지금 상황에서 사직하는 것은 검수완박만큼이나 검찰 수사역량의 손실"이라며 "재고해주시기 바란다"고 썼다.

신승희 전주지검 남원지청장도 "부장님, 재고를 거듭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박향철 대검 검찰연구관도 "부장님 사직이라니요, 안 됩니다. 끝까지 남아 힘을 보태주십시오"라고 만류했다. 안성민 수원지검 검사도 "역시 수사하실 때 모습과 같은 신속한 결단이시지만 정확한 결단은 아니신 것 같아 1도 동의할 수 없다"고 썼다.

정희도 동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도 "정권에 빌붙어 개혁 운운하며 검찰을 정권의 충견으로 만들려하며 검찰을 이 지경까지 망가뜨린 사람들은 뻔뻔하게 남아있는데 왜 이 부장이 나간다는 건가"라며 "그러지 말고 이 부장의 결기를 더해서 이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보세, 부탁하네"라고 만류했다.

한편 이 부장은 지난 8일 이프로스에  '소위 검찰개혁에 관한 총장님, 고검장님들 입장이 궁금합니다'란 글을 올려 김오수 검찰총장을 직격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글에서 "'내 목을 쳐라'고 일갈하시던 모 총장님의 기개까지는 기대하지 못하겠습니다만 현 정부 들어 기조부장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시다가 '도저히 이건 아니다'라고 하시며 사의를 표하신 문모 검사장님 정도의 소극적인 의사표현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부는 바람을 등에 맞고 유유히 앞으로 나가면서 '왜 너는 느리게 가느냐'고 비웃으실 때는 언제이고 바람이 앞에서 역풍으로 부니, 껍질에 목을 넣는 거북이마냥,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는 타조마냥 사라져버리시는 분들을 조직을 이끄는 선배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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