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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근처만 골라 '섬 쇼핑'…中기업 '검은 속내'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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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2019년 '중국삼기업그룹'(中國森田企業集團有限公司·삼그룹)은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지방정부와 비밀스러운 협의 끝에 섬 하나를 통째로 75년간 임차하는 계약을 진행한다. 솔로몬 제도 중앙정부는 이 계약 사실이 알려지자 계약 투자자인 삼그룹이 중앙정부와 논의하지 않았으며, 해외 투자자 지위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계약 무효를 선언한다.

#2. 그러자 삼그룹은 지난 2019년 10월 마나세 소가바레 솔로몬 제도 총리의 중국 방문 당시 일정 내내 의전에 나서는 등 중앙정부와 접점을 키웠고, 결국 2020년 4월 솔로몬 제도의 공식 외국인 투자자 지위를 획득한다. 이들은 5개월 뒤 다른 지역에서 중국 해군을 위한 75년 임차 계약을 진행하려 하지만, 계획이 사전에 유출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6일(현지시간)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에서 주민들이 총리 퇴진 요구 시위로 약탈당한 차이나타운 거리를 걷고 있다. 대만과 깊은 경제적 관계를 이어온 솔로몬제도의 섬 주민들은 소가바레 총리의 친중 외교 행보에 반발해 왔다. [AP=뉴시스]

지난해 11월 26일(현지시간)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에서 주민들이 총리 퇴진 요구 시위로 약탈당한 차이나타운 거리를 걷고 있다. 대만과 깊은 경제적 관계를 이어온 솔로몬제도의 섬 주민들은 소가바레 총리의 친중 외교 행보에 반발해 왔다. [AP=뉴시스]

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기업들이 전략적 위치의 섬들을 사들이고 있다”며 “위와 같은 일들이 세계 수십 곳에서 시도됐다”고 보도했다. 솔로몬 제도에 위치한 툴라기섬은 약 1200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으로 과거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기지를 세운 군사 요충지다. 삼그룹은 주로 석유 관련 사업을 다루는 기업이지만, 무기 수출입과 중국 선전 영화 제작도 하는 친(親)정부 기업이다.

매체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노리는 건 미국과 그 동맹국의 군사 기지 인근에 있거나, 주요 해상로에 대한 정찰 및 감시가 용이한 곳에 위치한 섬들이다. 석유 사업을 하는 삼그룹이 솔로몬 제도의 섬을 장기 임대하려는 이유에 대해 FT는 “중국의 기업들은 정부와 같은 입장에서 지정학적 야망을 보이고 있으며, 그 목표는 남태평양에 해군 기지를 짓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10월 중국을 방문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우)와 만난 솔로몬 제도의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좌). [AP=연합뉴스]

2019년 10월 중국을 방문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우)와 만난 솔로몬 제도의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좌). [AP=연합뉴스]

FT는 중국 기업들이 이런 목표를 위해 정부보다 먼저 태평양, 남미 등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나라와 교역을 늘리며 대만과의 관계부터 끊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대만 관계를 양국(兩國)이 아닌 양안(兩岸) 관계로 지칭한다. 이에 따라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선 대만과 단교해야 하기에 대만 수교국에서 활동을 먼저 시작한다는 것이다. 2018년 엘살바도르에 이어 2019년 솔로몬 제도가 대만과 단교했다.

이후 이들 기업은 지역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등과 친분을 쌓고, 지역 사업에 관심을 보이며 임차 사업을 진행한다고 FT는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작업이 단순히 중국 정부의 지정학적 이익이나 군사적 이득을 위해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고 자체 수익모델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관은 FT에 “중국 기업들은 현대판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인도회사는 17세기 초 영국, 네덜란드 등이 제국주의 무역과 식민지 점거를 위해 세운 회사다. 그래미 스미스 호주국립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원은 “중국의 많은 기업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이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태평양에서 세 번째로 큰 군도인 프랑스 자치령 뉴칼레도니아의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부결됐다. 이와 관련 프랑스 국제관계 분석가인 바스티앙 반덴딕은 “프랑스라는 안전장치가 사라진다면 중국이 뉴칼레도니아에 영구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갖춰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칼레도니아 금속의 최대 수출국이 중국이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태평양에서 세 번째로 큰 군도인 프랑스 자치령 뉴칼레도니아의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부결됐다. 이와 관련 프랑스 국제관계 분석가인 바스티앙 반덴딕은 “프랑스라는 안전장치가 사라진다면 중국이 뉴칼레도니아에 영구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갖춰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칼레도니아 금속의 최대 수출국이 중국이다. [AFP=연합뉴스]

중국 기업들은 이런 방식으로 필리핀 푸가섬에서 스마트시티 건설 등을 명분으로 2017년 임대차 계약을 시도했지만 보류됐다. 캄보디아 남서부 코콩주(州)에서 '다라 사코르'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중국 유니온개발그룹(UDG)은 지난 2020년 미국 재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다라 사코르 프로젝트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 자산을 유치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신뢰할만한 보고들이 있다”며 제재 이유를 설명했다.

문제는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들이 중국 자본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타르시우스 카부툴라카 하와이대 조교수는 “솔로몬 제도의 관리들은 중국의 이런 전략에 대응할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솔로몬 제도 야당 지도자인 매슈 웨일은 “몇몇 국회의원은 이미 중국 기업에 매수된 상황”이라고 F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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