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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젤렌스키 연설에 냉담했던 국회…국격을 떨어뜨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8일 영국 하원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 오른쪽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 영국 하원 의원들은 회의장을 꽉 채우고 기립박수를 보낸 반면, 한국 국회의원들은 60명가량만 참석해 썰렁한 분위기를 보였다. [연합뉴스]

지난달 8일 영국 하원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 오른쪽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 영국 하원 의원들은 회의장을 꽉 채우고 기립박수를 보낸 반면, 한국 국회의원들은 60명가량만 참석해 썰렁한 분위기를 보였다. [연합뉴스]

그저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이 중계된 우리 국회의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300명의 의원 중 60명 정도만 참석해 곳곳에 빈자리가 도드라져 보였다. 심지어 핸드폰을 하거나 딴짓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연설이 끝난 뒤 반응 또한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기립박수로 화답했던 미국·유럽 국가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일본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 등 의원 500명이 경청하고, 연설이 끝난 뒤 기립박수를 보냈다.

60명 참석해 핸드폰 등 딴 짓, 선진국은 기립박수 #나서야할 땐 가만 있다 외유성 출장 땐 '의원외교'

 의회는 행정부와 함께 외교의 중요한 축이다.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건 정부지만, 외교의 방향과 가치를 정하는 건 의회다. 위안부 문제가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 중 하나도 2007년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사죄(HR121)’ 결의안이었다. 국제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일본을 압박하게 됐다.

 우리 국회는 어떤가. 최근엔 코로나19로 잠잠해지긴 했지만, 외유성 출장을 떠날 때만 ‘의원외교’란 딱지를 붙이고 무리한 의전 요구와 갑질로 볼썽사나운 일을 벌였다. 2019년엔 피감기관의 예산으로 외국을 다녀온 국회의원 23명이 김영란법 위반으로 고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도 어떤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지난달 23일 일본 의회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에는 기시다 총리를 비롯 500여명의 의원들이 참석했다. [사진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지난달 23일 일본 의회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에는 기시다 총리를 비롯 500여명의 의원들이 참석했다. [사진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젤렌스키 대통령이 요구한 직접 무기 지원은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 대신 유엔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 지원이나 비전투 물자 지원 확대 등의 방안은 좀 더 성의 있게 고민해 볼 수 있다. 그러려면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인의 상황을 깊이 공감하는 진정성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이날 국회의 모습에선 전쟁의 심각성도, 국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지도자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과 K팝·드라마가 주도하는 문화강국으로 우뚝 섰지만, 20세기에는 외세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 어떤 나라보다 제국주의적 전쟁을 비판해야 할 위치에 있다. 지금같이 잠자코 있으면 북핵 위기와 같은 곤경에 처했을 때 국제사회에 우리가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선진 국가들의 의회가 꽉 찬 의석과 기립박수로 화답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질서가 온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로써 침략전쟁을 벌인 러시아를 규탄하고 약소국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이 존재한다는 문명사회의 가치를 공고히 했다.

 공수처법 등 법안 처리 강행 때 똘똘 뭉쳤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어디 있었나. 수권정당이 될 국민의힘 의원들은 평소엔 그렇게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더니 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가. 17분의 짧은 연설이었지만, 그사이 우리는 많은 걸 잃었다. 국회가 국격을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