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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윤석열·박근혜 회동, 전·현직 소통하는 계기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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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 도착, 박 전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 도착, 박 전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 50분간 만나 덕담과 조언 오가

5년여 단절…서로 존중하는 문화 돼야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간의 회동은 한때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김대중(DJ) 대통령은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직 대통령 부부와 함께 만찬을 하기도 했다. DJ는 “나는 국민들에게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들과 국정 경험을 나누면서 국난 극복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김대중 자서전』)고 썼다. 전 전 대통령은 “DJ 시절이 좋았고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곤 했다.

이게 단절된 게 문재인 대통령 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 수감 중이었다곤 해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의 주역인 이 전 대통령을 올림픽 개막식에 초대하고도 일반 출입구로 입장토록 해 ‘홀대’ 논란을 불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대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50분간 회동한 건 어떤 의미에선 ‘일상으로의 복귀’ 과정일 수 있다. 윤 당선인이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아무래도 지나간 과거가 있지 않나”라며 “박 전 대통령에게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음속으로 가진 미안함 이런 것을 말씀드렸다”고 했던데 인간적 정리(情理)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고 본다. 윤 당선인이 검사 시절이었던 2016년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해 박 전 대통령의 중형을 끌어낸 악연을 감안하면 말이다.

윤 당선인이 “당선되고 나니까 걱정돼서 잠이 잘 안 오더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가 무겁고 크다. 정말 사명감이 무섭다. 당선인 시절부터 격무이니 건강을 잘 챙기라”고 조언했다. DJ가 말한 전직 대통령들의 국정 경험과 지혜가 이런 것일 것이다.

윤 당선인이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했던 좋은 정책이나 업적을 계승도 하고 널리 홍보도 해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이 “감사하다”고 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전 정권과의 무조건적 단절은 분열을 낳을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배울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윤 당선인까지 13명뿐이다. 이들만 알고 고민하는 경지가 있다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외면한다면 가장 중요한 조언자를 잃는 셈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오명 속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레이건부터 클린턴까지 현직 대통령에게 실용적 조언을 하는 ‘현인’으로 자리매김한 사례도 있지 않나.

그러기 위해선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존중해야 한다. 자신도 5년 후엔 전직 대통령이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전직 대통령들도 더는 주역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당파적 지도자가 아닌, 중립적 국가 원로가 돼야 한다. 이번 회동이 그 출발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