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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확한 연금 통계도 없이 연금개혁 할 수 있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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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통계청이 개념화한 허브-스포크 모형.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통계청이 개념화한 허브-스포크 모형.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국가 통계, 부처마다 흩어져 있어 품질 저하  

통합 관리해 수치에 근거한 정책 만들어야

연금개혁을 하려면 개인·가구별로 연금을 얼마나 받는지 알아야 한다. 한데 이걸 한눈에 보여주는 포괄적 연금통계는 정부 부처 어디에도 없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개인연금은 국세청, 주택연금은 금융위원회·주택금융공사 등 담당 부처가 제각각이다.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을 추진 중인 통계청이 이들 기관과 자료 연계에 합의하는 데만 1년이 흘렀다.

노인빈곤율 통계도 마찬가지다. 노인빈곤율은 가처분소득이 전체 인구 중간소득보다 낮은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다. 한국 노인빈곤율은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고 한다. 그런데 이 수치는 2만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토대로 낸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여서 정확성이 떨어진다. 고령층은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인데, 자산소득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니 빈곤율이 실제보다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의 소득자료와 국민연금 등 4대 연금자료, 보건복지부의 복지통계를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전수조사인 인구주택총조사와 연결하면 더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지만 근거 규정이 없어 부처 간 협력이 쉽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이 앞다퉈 노인 기초연금을 올리겠다고 공약하고, 문재인 정부가 노인 대상 일자리 사업을 노인 복지 차원이라며 확대한 것도 정확성이 떨어지는 이런 통계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증거에 기반을 둔(evidence-based)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노인 빈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해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맞춤 처방이 나올 수 있다.

새 정부가 목표로 잡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핵심은 정확한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증거 기반 정책이다. 연계되지 못하고 분절된 데이터로는 연금개혁이나 인구절벽, 가계부채 같은 고차방정식을 풀 수 없다. 부처 간 연계되고 상호 검증된 통계 데이터를 잘 활용해야 증거가 풍부해지고 증거 기반 정책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래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고용시장을 충격에 빠트렸던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무모한 정책 실험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우리나라 재정 프로세스의 문제점은 예산을 편성하고 심사하는 데만 전력을 기울이고 상대적으로 결산과 성과평가는 부실하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예산 심사를 둘러싸고 여야가 샅바 싸움을 하는 건 흔한 풍경이지만 결산 과정은 상대적으로 별다른 논쟁 없이 넘어간다. 재정 당국의 예산사업 성과평가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국가 통계 데이터 산출 구조를 개편해 정확한 통계 데이터를 내게 되면 예산 집행이 제대로 됐는지, 성과는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총리실의 총괄·조정기능 강화를 뒷받침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