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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대신 부동산 임장갈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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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탐사팀 기자

여성국 탐사팀 기자

대선 후 또래 둘은 “촛불집회 대신 부동산 임장(臨場)이나 갈 걸 그랬다”고 했다. 자산 과몰입 시대라지만 냉소·조롱과 거리가 먼 이들의 말이라 뜻밖이었다. 이 중 1번 투표자는 정권이 바로 교체된 것에 한숨 쉬며, 2번 투표자는 현 정부가 실망만 안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부동산 정책을 믿고 기다렸지만 남은 건 “‘영끌족’이 못 된 후회뿐”이라 했다.

5년 전 대선 무렵, “부동산 무조건 오른다”고 한 30대 지인이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중용되면 상승장이 재현될 것”이라 주장했다. 부조리한 정권이 막 끝난 때, 기회·과정·결과가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던 때 이 말은 좀 불편했다.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극복할 거라 기대했기에. 발 빠르게 움직인 그는 무리한 영끌로 서울 아파트를 마련했고, 집값은 2배를 넘겼다. 그는 ‘선지자’로 불린다.

서울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30대 응답자 53.7%가 자신을 하위층이라 답했다. [뉴스1]

서울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30대 응답자 53.7%가 자신을 하위층이라 답했다. [뉴스1]

가수 강백수는 노래 ‘타임머신’에서 1991년으로 간다면 “아빠에게 6년 후 나라가 망하니 잠실 아파트, 판교 땅을 사라는 말만은 전할 것”이라 했다. 노래가 나온 2013년은 돌아보니 “6년 후 폭등장이 오니 온 가족이 영끌해 서울 아파트 사자”고 해야 했던 때로 또다시 돌아가고픈 해가 됐다. 노동소득 상위 서울 일부 직장인 얘기라 일축할 수 있다. 다만 그때 가능했던 많은 것이 지금은 넘볼 수 없는 것이 됐고 모두가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

지난주 교보문고 판매 1위 책은 『운명을 바꾸는 부동산 투자 수업』으로 데이터 전산화 이후 부동산 책이 종합 1위가 된 건 처음이란다. 구매자 절반 이상이 30대다. 부동산은 이제 ‘운명’이 됐다. 저자는 10년간 30채가 넘는 아파트와 상가를 사고 판 수익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 “단독 기사 쓰고 반향이 있으면 남는 건 보람뿐. 월급은 제자리고 서울 집은 더 멀어진다”고 열심히 일하는 한 동료는 자조했다. 회사 지분이 있는 일부 스타트업 종사자를 빼면, 대부분 상황은 비슷하다. “‘치열하게 일하라’는 상사는 ‘마용성’ 집이 있다. 밤낮 일해도 그처럼 집을 살 수 없는데 일에 목숨 걸어야 하냐”고 말한다. 한 경제지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하위층이라 인식하는 30대 비중은 53.7%로 실제 소득 기준 하위층(16.2%)보다 훨씬 높았다. 무주택자보다 낫지만 1주택자도 속이 탄다. 빚이 고맙지만 무겁고 무섭다. 옮기고 싶은 동네가 오르는 속도는 훨씬 가파르다. 책 『모두가 기분 나쁜 부동산의 시대』가 지적하듯 주택 정책이 갈피를 못 잡을 때 결정권자들이 보인 건 모순적 언행이었다.

새 정부에선 어떨까. 부동산 카페를 열심히 보는 친구는 “민간 임대사업자, 강남 거주자, 다주택자가 신난 걸 보니 뭔가 착잡하고 불안하다”고 했다. 시장에 맡기면 나아질까 생각하던 찰나 강남 집 대신 청주 집을 팔아 비판받던 전 청와대 인사가 충북 지사 후보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렸다. 염치란 무엇일까. “촛불집회 대신 임장갈 걸”이란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