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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오른 게 없다…외식물가 24년 만에 최대폭 상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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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가통계포털(KOSIS)의 10일 발표에 따르면 3월 외식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올라 1998년 4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갈비탕·햄버거·짜장면 등을 포함해 39개 외식 조사 품목의 물가가 모두 상승했다. 이날 한 시민이 서울 시내 식당 앞을 지나고 있다. [뉴시스]

국가통계포털(KOSIS)의 10일 발표에 따르면 3월 외식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올라 1998년 4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갈비탕·햄버거·짜장면 등을 포함해 39개 외식 조사 품목의 물가가 모두 상승했다. 이날 한 시민이 서울 시내 식당 앞을 지나고 있다. [뉴시스]

서울에서 칼국수 한 그릇 ‘8000원 시대’가 개막됐다. 냉면 가격도 ‘1만원 시대’ 개막이 코앞이다.

10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칼국수 1인분의 평균가격은 8115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8000원대를 넘겼다. 1년 전(7462원)보다 8.8% 올랐다. 냉면 1인분 가격은 1년 새 9.7% 오른 9962원을 기록했다.

이들 2개 품목 외에도 김치찌개백반·비빔밥·삼겹살·짜장면·삼계탕·김밥 등 다른 외식 품목도 모두 전년 대비 가격이 올랐다. 소비자원이 선정한 8대 대표 외식 품목 가운데 삼겹살·삼계탕을 제외한 6개 품목이 전년보다 5% 넘게 올랐다. 참가격에 표시되는 외식 물가는 도심뿐 아니라 외곽의 상대적으로 값싼 식당의 가격도 조사해 평균을 구한 값이라 직장인의 체감 물가보다는 가격이 낮게 나타난다.

서울 지역 주요 외식품목 1년새 얼마나 올랐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서울 지역 주요 외식품목 1년새 얼마나 올랐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는 식자재 가격 급등과 최저임금에 따른 인건비 상승에다, 외식 수요까지 늘어난 게 종합적으로 외식 물가 인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격 인상이 자제되다가 한 번에 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식값 한번 오르면 쉽게 안 내려

실제 최근 들어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 서울 명동의 터줏대감으로 유명한 명동교자의 칼국수 가격은 지난 2월 1만원으로 올랐다. 2019년 2월 9000원으로 가격을 올린 데 이어 3년 만에 1000원을 올린 것이다. 봉피양·필동면옥 등 서울 시내 유명 냉면집도 올해 들어 가격을 1000원씩 올렸다. 각각 평양냉면 한 그릇에 1만5000원, 1만3000원이다.

이 밖에도 통계청이 집계하는 다른 외식 품목도 가격이 많이 올랐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3월 외식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올랐는데, 1998년 4월 이후 23년11개월 만에 가장 상승 폭이 컸다.

품목별로 보면 39개 외식 품목이 모두 올랐다. 갈비탕(11.7%)의 상승률이 가장 높았고 죽(10.8%)·햄버거(10.4%)·생선회(10.0%)도 작년 같은 달보다 10% 이상 올랐다. 남녀노소 즐겨 찾는 짜장면(9.1%)·김밥(8.7%)·짬뽕(8.3%)·치킨(8.3%)·라면(8.2%)·설렁탕(8.1%)·떡볶이(8.0%)·칼국수(6.9%)·돈가스(6.6%) 등도 많이 올랐다. 고기류 상승률은 소고기(8.1%)·돼지갈비(7.8%)·삼겹살(6.6%)·불고기(6.1%)·스테이크(5.5%) 등 순이었다.

곡물 수입단가지수 동향 및 전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곡물 수입단가지수 동향 및 전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물가상승률이 4%를 밑도는 외식 품목은 삼계탕(3.9%), 구내식당 식사비(3.3%), 맥주(3.2%), 해물찜·소주(각 2.8%), 기타 음료(2.4%) 등 6개에 불과했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경기가 코로나19 충격에서 회복하면서 외식 수요가 늘었고, 식자재 가격 등 원가가 오른 것이 외식 물가 상승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외식 가격은 농축수산물 등과 달리 하방 경직성이 있어 한 번 오르면 쉽게 내리지 않는 데다, 대내외적으로 추가 상승 요인도 적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수입 곡물 가격이 최근 6개 분기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이를 원료로 하는 국내 식품이나 사료 등의 가격도 덩달아 오를 전망이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식품업계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이날 트레이딩이코노미에 따르면 식품 원료로 쓰이는 밀 국제 가격은 지난 2월 말 부셸(bu)당 1000달러(약 123만원)를 돌파했다. 600~700달러 수준을 유지하던 지난해 말과 비교해 몇 달 사이 300달러가 상승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밀 가격 상승의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다. 밀뿐만이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매달 발표하는 식량가격지수는 지난달 159.3포인트를 기록했다. 2월(141.4포인트)과 비교해 12.6% 오른 것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6년 이후 최대치다. 식량가격지수는 곡물과 육류, 설탕 등 5개 품목군의 국제 가격 동향을 조사해 매월 발표한다.

식품업계는 “당장은 재고로 버틴다”고 말하지만 뚜렷한 타개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라면 등을 생산하는 식품업계 관계자는 “밀가루 가격 등이 가파르게 올라 가격 동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당장은 재고로 버틸 수 있지만 원재료 상당수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재고가 바닥나면 비싼 가격에 사들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재료가 오른 만큼 상품 가격을 인상하는 게 정공법이지만 지난해와 올해 라면·빵 등 주요 생필품 가격을 올린 만큼 당장 가격 인상에 나서긴 어렵다.

옥수수·해바라기유 공급도 불안

식품업계의 고민이 깊은 건 곡물 가격이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서다. 세계 밀 창고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러시아 침공으로 올해 주요 곡물 생산량이 평년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밀에 더해 옥수수와 해바라기유 공급도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전우제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미국 허리케인 등으로 곡물 생산이 11조원 감소했다”며 “우크라이나는 4월부터 파종을 시작해야 하는데 디젤 부족 등이 더해지면서 올해 하반기에도 (곡물)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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