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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미닝아웃'…한밤중에도 뛰쳐나가는 이런 동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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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동아리 양극화]③동아리 ‘미닝아웃’

“학교 정문 앞에 고양이가 쓰러져 있어요.”
국민대 19학번 심모(23·여)씨는 지난해 학우의 제보를 받고 급히 달려나갔지만, 길고양이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지금도 밤 10시에도 친구들과 뛰어나간다. 길고양이를 위해 급식소를 설치하고 구조·치료 활동을 하는 동아리 ‘국민대고양이추어오’의 이야기다. ‘추어오’는 길고양이가 “추워요”라고 말한다는 의미를 담아 온라인에서 쓰는 고양이 말투 ‘에오체’를 변형한 것이다.

2015년 학생 2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70명 규모의 교내 중앙 동아리가 됐다. 최근에는 길고양이 ‘소소(小小)’를 구조했다. 성장이 끝난 성묘지만 몸집이 작아 붙은 이름이다. 구조 당시 구내염으로 음식을 먹지 못해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위었었지만, 지금은 4.5kg 정상 체중이다. 심씨는 “고양이와 학생들의 공존을 돕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했다.

지난해 국민대에서 포획된 길고양이 '소소'의 모습. 동아리 '국민대고양이추어오'의 도움을 받아 구내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해 국민대에서 포획된 길고양이 '소소'의 모습. 동아리 '국민대고양이추어오'의 도움을 받아 구내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인스타그램 캡처]

코로나19로 대면 활동이 줄었지만, 조용히 성장하는 동아리도 있다. 친환경·인권·동물권 관련 동아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MZ세대의 특성 중 하나로 꼽히는 미닝아웃(Meaning out·가치소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표현할 수 있는 동아리를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하고 비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2018년 창립한 비거니즘(Veganism·채식주의) 연합동아리 ‘비온대’의 확산세도 이와 비슷하다. ‘비거니즘을 온 대학에’라는 뜻을 가진 이 동아리는 6곳으로 시작해 현재 전국 12개 대학으로 확대됐다. 학교 내 ‘채식선택급식권’ 촉구 운동과 동물권 캠페인 등을 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비거니즘 동아리 ‘베지쑥쑥’ 운영진 강우정씨는 “회비 내고 친목 도모만을 추구하기보다 친환경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미래를 위한 활동”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비건음식을 판매하거나 세미나, 영화제 등을 하며 채식주의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해 10월 2일 서울시립대 비거니즘 동아리 ‘베지쑥쑥’은 직접 비건손만두를 빚는 비건쿠킹클래스를 진행했다. [출처 베지쑥쑥 제공]

지난해 10월 2일 서울시립대 비거니즘 동아리 ‘베지쑥쑥’은 직접 비건손만두를 빚는 비건쿠킹클래스를 진행했다. [출처 베지쑥쑥 제공]

‘대학생기후행동’ 연합동아리 대표 최재봉(26)씨는 홀로 피켓을 들 때가 많았지만, 이젠 외롭지 않다고 했다. 2020년 인천대 소모임으로 시작했던 동아리가 2년 만에 5개 지역 20개 지부로 확대됐고 회원은 200여 명으로 늘었다. 최씨는 “그레타 툰베리가 국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던 것처럼 시작했는데 하나둘 모이게 됐다”며 “산불과 홍수 등 이상기후를 피부로 느끼는 세대다. 그 심각성을 알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환경과 불평등, 차별 등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활발하게 의견을 표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동아리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실용성’을 재정의 하다

이들은 동아리의 ‘실용성’을 재정의한다.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분야의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을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무너진 ‘대학 담론장’의 부활을 꿈꾸기도 한다.

서울 지역 10여 개 대학 123명이 모여 지난 2일 출범한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대표인 남상혁(29)씨는 “취업 이야기를 주로 하는 대학에서 인권의 가치를 논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차별받는 소수자 인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실용적인 일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차별·혐오 발언이 많아진 시기에 사회 변화의 촉진제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가치지향 동아리의 약진에 대해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팬데믹을 겪으며 ‘위기 감수성’을 갖게 된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2월 1일 대학생기후행동은 ‘기후악당 민중재판’을 진행해 대기업 총수들에게 징역 500년씩을, 이를 방조한 대통령 등과 국회의원 109인 등에게 각각 징역 200년을 선고하고 판결문 전달식을 진행했다. [대학생기후행동 제공]

지난해 12월 1일 대학생기후행동은 ‘기후악당 민중재판’을 진행해 대기업 총수들에게 징역 500년씩을, 이를 방조한 대통령 등과 국회의원 109인 등에게 각각 징역 200년을 선고하고 판결문 전달식을 진행했다. [대학생기후행동 제공]

코로나는 동아리 생태계의 분기점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동아리 체험을 하고 있다. 20뉴스1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동아리 체험을 하고 있다. 20뉴스1

대학 동아리는 대학생활의 꽃이자 사회의 거울이다. 동아리 형태로 ‘서클’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1960년대 이후 시대상을 반영하며 변모했다. 1970년대에는 밴드·연극·문학 활동이 활성화됐고, 1980년대는 사회비판 토론 동아리와 종교·서예 동아리 등이 인기를 끌었다. 대중문화가 확산한 1990년대에는 공연·영화 등으로 다양해졌다. 2000년대부턴 취미·봉사·취업 등 인적 네트워크가 끈끈하게 구축되는 특성을 보이며 운영돼왔다.

코로나19가 캠퍼스를 장악한 시대에 동아리는 양극화 등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한양대 기독교 동아리 회장 김모(24)씨는 “비대면 체제로 전환하며 1대1 멘토링 등을 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바둑 동아리인 ‘한양기우회’ 성원준(23) 부회장은 “최근 3년간 전체 회원 수는 비슷했지만, 활동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최근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느다는 광운대 3학년 서모(24)씨는 “친구들도 동아리나 대외 활동 대신 아르바이트나 게임을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3년 차인 지금이 대학 동아리 생태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중백 교수는 “대학에서 3년은 긴 시간이며 한 세대가 날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올해까지 팬데믹 여파가 지속한다면 현재 트렌드가 정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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